[논쟁]전자주민카드 찬반양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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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번 국회에서 주민등록법이 개정됨에 따라 내년 12월에는 전자주민카드 시대가 열린다.

그러나 14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공동대책위는 프라이버시가 침해된다며 개정법률 철회요구 시위를 벌이는 등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내무부는 법률안 심의과정에서 쟁점에 대한 수정.보완책이 마련됐다며 새 제도의 효율성을 강조하고 있다.

▷찬성(김돈기 내무부 주민과장)

현행 주민등록증은 대부분 83년에 일제경신, 발급돼 사진만으로는 본인 여부를 식별하기 곤란하고 위.변조가 용이해 여권위조.신분위장.금융 및 토지사기 등 각종 범죄에 악용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해 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94년부터 주민등록증 경신을 검토하면서 새로 발급할 주민등록증은 위.변조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고 국민들의 편의를 함께 도모할 수 있는 다기능카드로 전자주민카드를 추진하게 됐다.

그동안 주민카드사업의 근거법률인 주민등록법 개정안의 국회심의와 공청회 등에서 제기된 주요쟁점은 크게 두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기존의 주민등록증 이외에 주민등록등초본.운전면허.의료보험.국민연금등 일곱가지 증명기능을 전자주민카드에 수록함으로써 정보 통합에 따른 국가기관의 오.남용 우려와 이로 인한 국민 사생활 침해문제다.

둘째, 행정기관 내부자에 의한 정보유출 가능성과 외부자에 의한 해킹 등 전산자료의 교란 및 유출로 인한 폐해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해선 국회심의과정에서 많은 수정.보완이 이뤄졌다.

우선 사생활 침해 우려가 해소되도록 당초 주민카드에 수록키로 돼 있던 일곱가지 증명중에서 운전면허.의료보험.국민연금 등 세가지 기능은 완전히 제외하고 주민등록증과 주민등록등초본.지문등 세가지 기능만 수록하되, 인감은 본인이 희망할 경우에 한해 수록할 수 있도록 범위를 대폭 축소했다.

또 내부자에 의한 정보유출 가능성과 외부자에 의한 침입 및 교란 가능성에 대해선 기술적.제도적 보안장치가 마련됐다.

예를 들면 내부자에 의한 자료유출 방지를 위해 주민카드자료 열람은 운영자와 감독자가 소지한 각각 다른 두가지 열쇠를 함께 사용해야만 가능토록 하고 자료의 열람내역과 담당자의 인적사항.시간 등이 컴퓨터에 의해 자동으로 기록.관리되도록 했다.

자료무단열람.유출자에 대하여는 3년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처벌규정을 대폭 강화했다.

그리고 외부자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주민카드 전산망을 일반통신망과 완전 분리된 전용통신망으로 구축했다.

주민등록전산망과 같은 전용통신망은 기술적으로 해킹이 불가능하며, 미 국방부나 연방수사국 (FBI) 등에서 해커등에 의한 전산망 침투사건이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이는 인터넷등 공중통신망을 이용하는 일반전산망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와 함께 IC칩을 사용함으로써 개인정보를 전산화하고 주민등록 이외의 사항을 입력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일부 제기됐으나 수록자료의 범위를 성명.사진.주민등록번호.주소.호주.세대사항.병역사항.주민등록기관코드.지문 등 아홉가지로 국한해 법률에 명기해 놓고 있다.

따라서 시민단체들의 우려는 기우 (杞憂)에 불과한 것이다.

주민카드는 오히려 국가신분증의 위.변조 방지와 개인정보 보호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국민편의 증진과 국가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주민카드제가 시행되면 현재 발급수요가 연간 1억2천만통에 달하는 주민등록등초본을 은행.학교.백화점.지하철 등 다중이용장소에 설치할 예정인 무인발급기를 통해 발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약 1조원으로 추정되는 주민등록등초본 발급에 따른 행정경비와 사회적 간접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반대(이대훈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3천4백만명의 '인간바코드' 제 도입이 이처럼 비밀리에, 순간적으로 통과된 것은 그 자체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기술선진국은 왜 도입하지 않는지, 몇년 더 토론한 뒤에 결정해서는 왜 안되는지, 국민의 프라이버시 보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첫 논의를 채 시작하기도 전에 '미지의 제도' 가 실시될 판이다.

정보화사회에서 개인의 신상정보 데이터 베이스는 누구나 탐내는 고가의 상품이다.

3천4백만명의 신상정보를 전산화해 한곳으로 집중시키는 것은 현재 어느 나라도 시도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가공할만한 데이터 베이스다.

전산정보는 상품가치가 높을수록, 집중돼 있을수록, 네트워크가 넓을수록 유출이 잘 되는 법이다.

전자주민카드는 이러한 '유출의 약점' 을 모두 지니고 있다.

그래서 정보유출사고의 가능성은 높고 그 파장은 아무도 가늠할 수 없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 '사생활의 종말' 을 특집기사로 다루면서 개인이 신상정보를 지키려면 신용카드.사회보장카드.인터넷사용.전화설문응답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귀담아 들어야 한다.

정보화사회에서 정보는 권력이다.

우리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권력균형, 국가와 시민사회의 균형을 이제 비로소 논하기 시작했다.

선진국에서 주민등록정보의 전산화가 거론될 때마다 논란되는 것이 국가와 시민사회의 균형이다.

전자주민카드는 이 권력의 균형추를 영원히 마비시킨다.

전자정보시대에 한번 집중된 전자정보는 다시 분산될 수 없는 불가역성을 갖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동의 없이, 사생활보호제도 없이 이처럼 국민의 신상정보를 고도로 집중시키는 것은 시대역행적이다.

정보화사회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은 지켜져야 한다.

효율성.편리함에 일방적으로 밀릴 수 없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국가가 국민을 재고조사가 가능한 하나의 물건처럼 취급하는 것은 위헌' 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또 전자주민카드제는 선진국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의 프라이버시보호기준에 완전히 위배된다.

전자주민카드는 편리하지도 않다.

매년 3백만건의 주민등록증 분실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사람 사는 세상의 자연스런 모습이다.

분실된 전자주민카드의 악용을 막는 길은 비밀번호 하나 뿐이다.

또 정부는 주민등록 등초본.인감증명을 발급받기 위해 동사무소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전국 곳곳의 무인 단말기에서 즉각 발급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필요한 증명서 첨부절차나 관행을 과감하게 축소하고, 선진국처럼 친필서명으로 자기 증명을 하도록 권장하면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자신과 가족 정보의 유출에 대해 걱정하며 사는 것보다 더 선진적인 것이 아닐까. 요는 개정법안 통과로 단순히 '증' 이 '카드' 로 바뀐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새로운 국민감시시스템이 도입된 것이다.

국가의 필요로 전국민의 신상정보가 순간적으로 확인되는 거대한 조직력, 이는 전체주의와도 통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전자신분증명제도는 논란이 심하고 또 생소한 것이다.

왜 우리만 화약을 지고 불섶에 뛰어드는 격의 제도를 국민을 대상으로 실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전자주민카드가 불행한 미래의 전주곡 또는 대형 비리사건이 되기 전에 이 법은 조속히 개정돼야 하며, 오히려 프라이버시 보호에 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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