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림 OB맥주 사장의 벽털기 경영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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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소재 OB맥주 본사 5층 100㎡ 규모의 임원실. 개인방은 물론 칸막이도 없다. 임원실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주는 팻말이 있는 것도 아니다. 탕비실·복사실이라고 적혀 있는 문으로 들어가면 이 곳이 나온다. 사장실도 따로 없다. 이호림(49) 사장은 8명의 임원과 함께 일한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이 사장이 취임한 2007년 4월, 이 곳은 꽉 막힌 공간이었다. 이 사장은 “당시 OB맥주는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었다”며 “그래서인지 조직에 활력이 없었고 감추는 것도 많았다”고 말했다.

OB맥주는 한때 주류업계의 상징이자 간판이었다. 하지만 1991년 발생한 낙동강 페놀사건 이후 하향세를 탔다. 1990년대 70%를 웃돌았던 시장점유율은 2006년 40%까지 추락했다. ‘구원투수’ 이 사장으로선 대반전의 계기가 필요했다. 그가 위기탈출 비법으로 생각해낸 것은 임원실 벽 허물기.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고 근무하면 소통이 가능해질 것으로 여겼다.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벽이 무너지자 사장과 임원, 임원 간 거리가 좁아졌다. 팀장급도 줄줄이 칸막이를 뺐다. OB맥주 31개 영업점도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 사장의 ‘벽털기 경영법’이 OB맥주의 조직문화를 바꿔놓은 셈이다.

분위기가 바뀌자 실적도 상승세를 탔다. 카스의 시장점유율은 2006년 27%에서 2008년 33%로 껑충 뛰어올랐고, 이에 따라 OB맥주의 맥주시장 점유율도 2006년 40%에서 2008년 42%로 상승했다. ‘시노베이트’가 조사한 브랜드 선호조사에서 카스는 20대가 가장 선호하는 맥주(국내)로 선정됐다.

이 사장은 “경영자의 의무는 직원의 새로운 가치창출을 유인해 수익으로 연결하는 것”이라며 “열린 경영이 OB맥주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좋은 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OB맥주의 매각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외부에선 OB맥주를 누가 인수하느냐를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그러나 정작 OB맥주 임직원들은 별다른 동요가 없다. 벽까지 털어 위기를 극복했는데, 무엇이 두렵겠느냐는 자신감의 발로다. 이 사장의 벽털기 경영법이 OB맥주를 위기에도 끄떡하지 않는 조직으로 변화시킨 셈이다.

이윤찬 이코노미스트 기자

* 상세한 내용은 6일 발매되는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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