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미나리 맛보셨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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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지난달 22일 팔공산 자락인 대구시 동구 용수동 골짜기. 찌푸린 날씨에도 점심시간을 맞아 좁은 도로엔 승용차들이 바삐 오간다. 한 비닐하우스에 들어서자 주부들이 막 수확한 미나리를 다듬으며 씻고 있다. 앞쪽에는 맑은 물에 헹군 미나리가 쌓여 있다.

팔공산 자락인 대구시 용수동 한 미나리 재배농가의 비닐하우스가 미나리를 맛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황선윤 기자]


이 미나리는 바로 옆 비닐하우스로 배달된다. 미나리를 먹으러 온 사람들 때문이다. 옆 비닐하우스(160㎡)에는 어른·아이 30여 명이 왁자지껄하다. 식탁 위 불판에서 구운 돼지고기에 된장 등 양념을 얹어 미나리에 싸먹는다. 이웃과 함께 왔다는 주부 김모(45·대구시 복현동)씨는 “팔공산 미나리가 맛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팔공산 미나리’를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깨끗한 지하수에 친환경적으로 재배한다는 입소문까지 얻었다. 농민들은 포도 농사 때보다 수익이 많아졌다며 싱글벙글이다.

◆포도 대신 미나리=용수동·미대동·구암동 일대에서 해마다 재배되는 미나리는 1만6500㎡(5000평) 정도. 50여 농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전망이 불투명한 포도밭을 폐원한 뒤 2004년부터 대체작물로 재배했다. 포도가 중심 작목이던 용수동 일대가 ‘미나리꽝’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재배 면적은 농협·구청 등이 지급하는 보조금에 따라 달라진다.

농민들은 매년 8월부터 재배에 들어가 이듬해 2~5월 수확한다. 12월에는 웃자란 미나리를 잘라 3개월 동안 ‘잠을 재워’ 뿌리와 줄기를 굵고 튼튼하게 만든다. 재배 기간 중에는 지하수를 끌어올려 사용한다. 일대가 상수원보호구역이어서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비료도 화학비료가 아닌 친환경비료를 쓴다. 재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연작 피해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

공산농협 이창주(44) 과장은 “재배기술 보급과 친환경 재배로 팔공산 미나리는 육질이 단단하되 질기지 않고 부드러워 아삭아삭한 맛이 일품”이라고 자랑했다. 청도 한재 미나리, 가창 정대 미나리처럼 팔공산 미나리가 대구 근교에서 새 이름을 얻고 있는 것이다.

◆포도보다 많은 수익=요즘 주말마다 농가의 비닐하우스에는 미나리를 맛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대부분 돼지고기 등을 미리 준비해 와 구워서 미나리에 싸먹고 있다. 덕분에 3600여㎡에 미나리를 재배한 진모(59)씨는 포도재배 때 2000만원보다 1.5배 많은 올해 3500만원의 순수익(가족 노동비 제외)을 기대한다. 진씨는 “제초제를 쓰지 못하고 깨끗하게 다듬어야 하는 등 포도보다 일손이 많이 가는 게 흠”이라고 말했다. 진씨는 유통업체에 미나리를 맡기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미나리를 전부 팔고 있다. 2~3월 주말에만 500~600명씩 찾는 바람에 하루 200~300㎏(1㎏ 1단에 6000원)을 거뜬히 팔고 있다.

공산농협에 따르면 50여 농가는 평균 2300㎡(700평)에서 미나리를 재배, 2100만원(1㎏ 6000원 기준) 매상에 순수익만 1200여만을 올린다. 수익면에서 포도보다 1.5~2배 가량 많은 액수다.

하지만 서서히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미리 준비하지 않은 손님들의 요구로 농가에서 고기·주류 등을 팔면서 인근 음식점의 항의를 받고 있다. 또 쓰레기 배출 등 상수원 오염도 점차 우려되고 있다.

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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