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코프의 신세대론 '카오스의 아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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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스크린 세대의 문화가 세기말을 압도해 온다. 기성세대는 이 새로운 세대들을 경박하고 끈기 없으며 집중력이 달리는데다가 나약하다는 비난까지 보탠다. 심지어 세상이 종말로 치닫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한탄까지….

헐렁한 바지, 힙합춤, 염색한 머리, 몇 개씩이나 한 귀걸이, 예전 같았으면 아주 어린 꼬마들이나 볼 만한 영화 따위를 즐기기, PC통신·삐삐·핸드폰 등으로 연락망을 구축하려는 집착, 공상과학이니 귀신이니 하는 미신적 취향 등등. 모든 것이 어른들의 눈엔 하나같이 한심하게 비친다.

그러나 문화비평가 겸 소설가인 더글러스 러시코프에겐 다르다. 올해 서른여섯살의 이 빼어난 소장학자는 바로 지금, 우리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이 문화 현상들을 실제 체험으로 접하면서 분석하는 위치에 선다. 지난해 그가 펴낸 ‘카오스의 아이들’이 그 첫번째 산물이다.

이 책은 십대들의 생활 속에, 그들이 듣는 노래와 즐기는 텔레비전 프로와 장난감과 유행과 문화 코드들 속에 마치 프랙탈 도형처럼 드러나 있는 미래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전자 오락 게임과 인터넷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커가는 것이 십대들의 행동과 사고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들여다봄으로써, 저자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복잡해질 미래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모색하는 것이다.

러시코프의 성찰은 서핑·스케이트보딩에서 스노보딩에 이르는 스포츠의 진화 과정에서 시작한다. 현대 수학에서 카오스 이론이 날개를 펴고 있다. 같은 시간, 눈 덮인 산에서는 활강로를 통제하는 스키 대신에 엎어지고 구르며 일부러 틈새와 요철을 찾아 즐기는 스노보딩이 일대 유행이다. 영락없는 카오스다.

이는 선형적·직선적 사고의 용도폐기를 예견하는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그런 현상을 읽게 하는 상황은 여기저기에 널려있다. 영상편집에서는 점점 빠른 컷들로 숨가쁜 혼란을 자아내는 기법이 인기를 얻고, 한 채널을 진득이 들여다보는 대신 리모컨을 손에 들고 계속 채널을 바꾸는 ‘채널 서핑’ 시청법은 이미 다반사가 됐다. 러시코프에 의하면 이는 아이들에게 불연속성에 대한 감각을 심어주며, 동시에 그 밑에 숨은 연속성을 체득하게끔 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지금 막 인류의 문명은 어린 시절을 지나 사춘기로 접어들고 있다. 그러니 종말 운운하며 겁을 낼 게 아니라 현실을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는 그의 진단은 의미있어 보인다. 이로써 허섭스레기같이 보이는 온갖 현상들 속에서 우리는 새롭게 태어나고 있으며, 카오스의 아이들을 이해하는 것은 곧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기성세대의 눈에 아무리 마땅치 않고 거칠고 유치하게 보일지라도 아이들은 실제로 다가올 미래를 앞서 받아들이고 추구하고 있다. 외형상 이는 카오스 흐름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러시코프는 그들을 배우고 새로운 흐름을 읽으며 거기에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지금 우리 어른들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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