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대외신뢰부터 회복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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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공황으로 곧잘 번역되는 영어의 패닉 (panic) 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목신 (牧神) 패니코스 (Panikos)에서 유래한다.

뿔나팔을 불며 염소떼를 몰고 이 고원 저 고원에 출몰한다.

무리를 지어 몰고다닌다는 뜻에서 '떼거리의 신 (神)' 으로도 불린다.

현실의, 또는 막연한 두려움이 돌발적으로 몰아오는 혼란을 보통 패닉으로 부른다.

극장 안에서 누군가 갑자기 '불이야' 하고 외칠 경우 일어나는 혼란이 전형적인 패닉이다.

패닉 하면 경제공황을 연상하고, 1929년 미국의 대공황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패닉은 꼭 그런 어마어마한 위기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주식이나 금융상품 시장에서 누군가 '불이야' 를 끊임없이 외쳐댄다.

패닉은 시장에서 밥먹듯 일어나고, 크고 작은 패닉의 연속이 곧 시장의 흐름이다.

우리 경제는 지금 패닉 상태다.

나라 안팎에서 '불이야' 란 외침이 잇따르고 외국투자가들은 다투어 주식을 팔아 달러로 바꿔 나간다.

국내 가수요와 일부 환투기가 한몫 끼어들고, 환율 급등과 주가 폭락이 물고 물리면서 우리의 금융시장은 당장 어떻게라도 될 듯한 위기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바야흐로 한국은 금융공황으로 치닫고 있는가.

악성 외채가 많고 해외로부터 추가로 돈을 빌리기가 어려워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당장의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상황도 아니다.

전체 성장세는 지속되고 무역수지도 서서히 개선되는 등 실물경제의 모양새는 나쁘지만은 않다.

우리 경제의 병은 구조적 질환이어서 쉽게 치유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당장 어떻게 되지도 않는다.

경제의 '근본' 은 튼실하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일반적 평가다.

그런데도 왜 '불이야' 소동인가.

그 본질은 한마디로 신뢰의 위기다.

바깥에서 계속 '불이야' 하고 외치는데는 그럴만한 이유들이 있다.

앞으로 몇년간 한국경제에 이렇다할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관적 전망이 심심찮게 고개를 든다.

비용에서는 중국에 눌리고, 기술과 효율에서는 일본에 눌려 '한강의 기적은 끝장' 이라는 최근 부즈 앨런 한국보고서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샌드위치적 상황은 한국 뿐만은 아니다.

외국인들 눈에 미덥지 못한 우리쪽 대응이 계속 문제다.

금융산업은 곪을대로 곪았는데도 구조조정 등 개혁은 외면한 채 임시방편적 땜질처방으로 급급하고 있다.

확고한 의지도, 일관된 정책도 없고 모든 것을 대선 이후로 미룬 채 미봉책으로 허둥대는 정부의 모습이 극도의 불신을 사고 있다.

정치권과 대선후보들은 지지율에 도움이 된다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다.

'패거리 정치' 의 세 (勢) 몰이 패닉만이 극성을 부릴 뿐이다.

정국의 혼란은 곧 경제정책의 표류다.

시장에서의 패닉이 정책 및 정치의 혼돈과 맞물릴 때 국가경제는 위기로 치닫는다.

합리적인 예측도, 신뢰도 생겨날 수 없다.

'경제에 임기가 없다' 는 자세로 신뢰회복에 정부가 나설 때다.

원화가치 하락을 막기 위한 지나친 시장개입은 외환위기를 가속화할 수도 있다.

한국의 원화는 달러화에 대해 고평가돼 왔고, 동남아 각국 통화의 도미노식 평가절하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원화 절하는 어차피 불가피하다.

차제에 현실화하는 용단이 바람직하다.

패닉은 위험하지만 그 혼돈을 통해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조정기능도 갖고 있다.

해외 언론에 1회적인 반박문이나 법적 대응보다 일관성 있고 일체성을 지닌 장.단기 정책 프로그램으로 이들을 안심시키고 신뢰를 심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위기관리대책반을 상시 가동해 크고 작은 바깥의 '경보 (警報)' 를 챙기고 대외 신뢰를 다지기 위한 꾸준한 설득외교도 시급하다.

대통령과 대선후보들이 만나 일관된 정책의지를 다지고 누가 집권하든 기본틀은 변함이 없다는 합의를 대내외에 천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외관계에서 국제수지나 무역적자보다 몇배 더 무서운 것이 '신뢰의 적자' 다.

이 적자가 메워지지 않는 한 한국경제에 느닷없는 '불이야' 하는 소동은 그치지 않는다.

변상근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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