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국회,의결정족수 못채워 시급한 민생·금융법안 표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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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당들이 대선을 앞두고 후보간 합종연횡과 세 (勢) 불리기에 몰두하면서 내년도 예산안과 주요 민생법안을 심의.의결해야 할 국회가 의원들의 출석 부진으로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회의 자체가 무산되거나 연기되는등 파행상태가 극에 달하고 있다.

정치권이 연말 대선을 고려해 정기국회 회기를 30일 단축, 70일간의 회기로 하고 종료일을 12월18일에서 11월18일로 앞당김으로써 졸속 심의.토론조차 없는 의결이 더욱 잦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심각한 금융위기와 경기불황등 국정 주요 현안까지도 제대로 논의되지 않아 국회가 국정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과 우려를 낳고 있다.

고계현 (高桂鉉) 경실련정책부장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국회의 부실한 예산심의 부담과 폐해는 국민에게 그대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며 "각당 대선 후보들은 거창한 공약 대신 국회의원들이 보다 성실하게 국정심의에 임하도록 해야 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국회는 10일 예결위와 법사.재경.통일외무.교육위등 7개 상임위를 열어 예산안과 98개 법안.동의안을 처리할 예정이었으나 대부분 상임위가 출석 부진으로 지연되는 사태를 빚었다.

정부가 제출한 금융개혁관련 13개 법안의 경우 국제금융시장에선 한국 정부와 정치권에 금융개혁 의지가 있는지 연관지어 주시하고 있으나 대선바람 속에 회기내 처리가 불투명해져 금융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금융감독기구의 통합에 반대입장을 취하며 금융감독기구의 설치등에 관한 법률을 제외하고 당장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칠 11개 법안만 이번에 처리하자는 입장을 고수, 정부측과 갈등을 빚고 있다.

특히 신한국당의 경우 당초 정부 원안대로 통과하자는 입장이었으나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의 탈당이후로는 입장을 확정하지 못해 법안 처리 가능성을 더욱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예결위는 재적 50명중 10~15명의 의원만이 출석했으며 출석의원들도 수시로 자리를 비웠다.

그나마 본질과 관계없는 감청 (監聽) 공방.지역구 선심발언등으로 예산안 심의는 뒷전이었다.

예결위는 특히 각당이 특정 단체의 눈치를 보느라 지난해보다 78.7%가 증액된 관변단체 지원예산등에 대해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못해 거수기라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또 오후2시 열린 교육위는 교육위원 선출제도 개선을 주내용으로 하는 지방교육자치법등 주요 법안을 의결해야 하나 성원이 되지 않아 오후5시까지 순연됐다.

통일외무위는 의결 정족수 미달로 산회, 회의를 11일로 미뤘다.

재적 30명의 건설교통위는 오후4시 변웅전 (邊雄田) 의원이 법안의 문제점을 질문할 때 김종하 (金鍾河) 위원장과 邊의원등 단 3명만이 자리를 지켜 실질적 심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법사.농림해양수산.보건복지위등도 별로 다를게 없었다.

김현종.이정민.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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