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증시를 받쳐주는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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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월가 (街)에서 재채기를 하면 일본열도는 콧물을 흘리고 한국은 폐렴을 앓는다고 했다.

한데 이젠 거꾸로 아닌가.

캘리포니아 경제보다 몸집이 작은 태국감기가 홍콩을 휘청거리게 하더니 마 (魔) 의 '월요일' 기어이 자본주의 보루라는 월가를 까무러치게 했다.

대통령이 총 맞기 전에는 문을 닫지 않던 객장을 서둘러 닫은 치욕의 날이었다.

냉전은 가시고 독감전쟁 (cold war) 이 국경을 넘는가.

태국 연립내각이 출범한지 1년도 안돼 무너지는 것을 보면 통화고뿔을 허투루 다루다간 도원 (桃園) 의 굳은 결의도 내각을 지켜주지 못할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월가의 해는 다시 솟았다.

지난주 사상 최악의 월요는 최고의 화요로 밝았다.

이 바람에 코가 댓자나 빠졌던 홍콩증시가 번쩍 살아나자 때마침 월가를 찾은 장쩌민 (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의 코앞에서 누가 진짜 슈퍼파워인지 판가름나는 듯했다.

패닉 (공황) 을 다스리는데 현금을 찔러 넣던 멕시코식 구제보다 월가 치료법이 낫지 싶었다.

하지만 '월가 약발' 마저 지지리도 듣지 않는 것이 한국 증시였다.

월요패닉을 화요에 떨어버린 대반전극을 지켜보노라면 경제 리더십과 빅 머니, 그리고 작은 투자자 트리오 (三役)가 증시를 버티는 힘이라는 느낌이다.

폭락 다음날 세계의 관심은 월가의 개장에 쏠려 있었다.

가슴 철렁하게도 초장부터 팔자 쇄도였다.

이때 IBM이 35억달러를 풀어 자사주식 매입에 나섰다는 뉴스가 흘러들었다.

눈깜짝할새 썰물은 멎고 사자 불길이 댕겨졌다.

기관투자가 몰리고 뮤추얼 펀드는 평소 사고 싶던 것을 골라잡았다.

'위기는 기회다' 는 이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통신망은 녹아버렸다.

인터넷도, 브로커도 불이 났다.

들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떼를 연상하면 된다.

십리 밖에서 사자의 바스락 소리에 한놈이 뛰기 시작하면 수천마리가 우르르 먼지기둥을 일으키며 달린다.

한마리가 멈추면 질풍노도는 단박 멎어버린다.

그래서 리더의 한발짝은 천금같이 무겁다.

패닉이 닥쳤다는데 대통령은 어디에 갔는가.

하지만 영부인 쉰살 생일잔치에 바쁜 클린턴을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최규장 <재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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