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열풍 선발대회마다 지망생들 북적…연예인 등용문 인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2면

'○○와 함께 할 전속모델을 뽑습니다' '미스 △△를 찾습니다' 꼬리를 물고 열리는 각종 모델선발 행사들마다 '화려한 무대 위의 삶' 을 동경하는 이들로 넘쳐나고 있다.

'모델 선풍' 이다.

지난 4일 의류업체인 ㈜신원이 남성복 브랜드 '지이크' 의 모델을 뽑는 행사장. 20대초반 남성들중 전속모델로 활동할 대상 1명을 포함해 총7명을 뽑는 이 선발대회에는 무려 1천5백여명의 모델지망생들이 참가, 주최측을 놀라게했다.

"보수적인 집안에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 모델이 되겠다" (박창주.19세) "교내 그룹사운드 활동으로 이미 타고난 끼를 증명한 바 있다" (김석희.24세) 등등 지원동기도 가지가지. '패션의 대중화' 란 기치를 내걸고 이 회사가 지난해 3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서울대.연세대등 전국 15개 대학을 돌며 개최해온 패션쇼 행사때도 평균 1천명이상의 학생모델 희망자들이 몰렸었다고 한다.

어디 젊은이들 뿐일까. 한국모델협회가 지난 8월 주최했던 제1회 '대한민국모델채용박람회' 에는 젖먹이 아기부터 30대 미시주부, 40.50대 중년남녀, 70대 할아버지까지 자그만치 3만여명이 참가, 이른바 '나도 모델 시대' 의 개막을 알리기도했다.

이처럼 모델 일에 쏠리는 이상 (異常) 열기를 포착, 업체들은 앞다퉈 모델선발대회를 열어 일종의 판촉 이벤트로 활용하는 추세까지 보인다.

유투존백화점의 유투걸선발대회 (6월).㈜코오롱의 마시모 모델선발대회 (8월) 등 금년에 열린 행사들은 여는 족족 평균 수십대 1의 경쟁률을 자랑할 만큼 지원자들로 법썩댔다.

"일단 모델을 뽑는다면 소비자들의 관심이 확 쏠립니다.

게다가 선발행사에 본인들만 오겠습니까. 친구에 친지들한테까지 브랜드 인지도가 크게 올라가죠. 솔직히 사은품 주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높습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늘씬한 8등신 미남미녀들이 젊은 시절 잠깐 해보는 일' 정도로 여겨져 오던 모델 직종에 별안간 평범한 사람들이 앞다퉈 도전장을 내고 있는 이유는 뭘까. 첫째는 잇따른 패션행사.관련 드라마 방영등으로 모델이라는 일 자체가 일반인에게 인기직종으로 부상한 때문. 하지만 보다 큰 이유는 모델이 일종의 연예인 등용문처럼 알려진 까닭이다.

진희경.박영선.이소라.이석.차승원.그룹 '수' 등 모델 출신의 연예인 숫자가 하나둘씩 늘어나며 탤런트.배우.가수등을 꿈꾸는 이들이 모델을 한번쯤 거쳐가야할 '계단' 처럼 생각하게된 것이다.

모델교육기관인 모델라인 아카데미가 자체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강생들중 80%이상이 "다른 연예인이 되기위한 발판으로 모델직을 선택했다" 고 답변했다.

하지만 모델이 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모델이 됐다고 해서 누구나 연예인으로의 계단을 성큼 오를 수는 없는게 엄연한 현실. "모델학원을 수강한다고, 모델선발대회에서 뽑혔다고 누구나 모델이 될 수 있는 게 아녜요. 똑같이 활동을 시작해도 1년뒤엔 실력에 따라 90%이상이 도태되죠. 연예인이요? 그중에서도 하나 나올까말까입니다.

" 모델업계 종사자들은 탁월한 신체조건 (패션모델의 경우 남자 186㎝, 여자 176㎝이상의 키) 과 끼를 겸비하지 않았다면 아예 시작조차 하지말라고 잘라말한다.

성공할 확률이 희박하다는 것 외에도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점은 모델 일 자체가 화려하지만은 않다는 것. 오히려 종사자들이 스스로를 '3D업종 종사자' 라고 부를 정도로 고달프다.

패션모델들 중엔 밤새 무대 연습을 한 후에 온종일 패션쇼를 계속하다보면 응급차에 실려가는 경우도 왕왕 있다.

또 일부 A급 모델을 제외하곤 건당 모델료가 수십만원에 불과해 의상.메이크업등 '기본투자비' 를 건지기도 벅차다.

"20대후반만 넘으면 대부분 모델은 '정년퇴직' 을 하죠. 게다가 퇴직후에 변변히 할 일도 없다는 게 큰 문제예요. " 요즘 한창 잘 나간다는 모델 K모양 (22) 이 쓸쓸히 던진 말이다.

신예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