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관 없는 ‘하이눈’ 상황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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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지금 우리는 ‘하이눈(High noon)’ 같은 긴장되고 답답한 상황에 처했다. 하이눈은 1950년대 게리 쿠퍼와 그레이스 켈리를 주연으로 한 영화다. 1870년 미국 서부의 작은 마을 헤이드리빌. 정오(하이눈)의 기차로 무법자 프랭크 밀러가 5년 전 자기를 감옥에 보낸 윌 케인과 마을 주민들에게 복수하러 온다. 집집마다 시계는 정오를 향해 재깍재깍 움직이고 보안관은 악당과 맞서 싸울 주민들을 규합하려고 동분서주한다. 주민들은 후환이 두려워 집안에 숨고 보안관 홀로 무법자를 제압한다.

한국·미국·일본·중국·유엔의 시계는 지금 북한이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4월 4일이나 그 무렵을 향해 재깍재깍 돌아가고 있다. 긴장된 순간이다. 북한이 발사하는 것이 인공위성이라도 탄도미사일과 동일한 로켓을 사용하기 때문에 2006년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 위반이라는 국제사회의 경고도 북한에는 마이동풍이다. 보안관 케인이 무법자의 도착을 막지 못한 것같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강행을 막을 방도가 아무에게도 없다.

한국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PSI(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 참가를 고려한다고 하지만 그런 메시지도 북한에는 모기 소리만 하게 들릴 뿐이다. 일본이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는 북한 미사일을 요격미사일로 쏘아 떨어뜨릴 것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것이 그중 가장 힘 있는 대응이지만 그것도 기술적인 문제가 만만치 않아 실행이 쉽지 않고 성공은 더욱 어려워 보인다. 지금의 미사일 위기에서 보안관은 미국이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는 군부가 선호하는 강경 대응론과는 거리가 먼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는 눈치다.

결국 북한은 예정대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사후대책이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1718호를 다시 꺼내 강화하는 방안이 논리적으로는 맞지만 중국의 반대라는 현실의 벽을 넘기가 어렵다. 의장 성명 정도로 만족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한국은 PSI 참가 말고는 속수무책이다. PSI 참여라는 것은 미사일 대책이 아니다. 그것은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을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정보 교환이 핵심 활동이다. 핵·미사일이나 부품을 실은 북한 선박이 항해 중이라는 정보가 있어도 공해상에서 차단·정선·검색을 할 수는 없다.

94개국이 가입한 PSI 참가 자체를 반대할 명분은 약하다. 북한을 자극하지 말자는 논리는 2006년 북한 핵실험과 하루 일곱 발의 미사일 발사로 설득력을 잃었다. PSI 가입은 한국이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일 뿐 그것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견제하는 효과는 전혀 없다는 사실은 알아야 한다.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사후 대응의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는데 미국은 북한에 대한 응징이나 제재 강화보다는 북·미 대화 재개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이것이 한국의 고민이요 일본의 고민이다. 미국의 그런 입장은 한국의 강경대응을 견제하는 효과를 가질 것이다. 4월 2일 런던에서 하는 이명박·오바마 회담은 한·미 간 입장 조율의 좋은 기회면서 ‘미사일 이후’에 대한 한·미 공조의 분수령이다. 30분 안팎의 짧은 회담 시간에 강경 일변도의 주문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공조 강화를 전제로 큰 틀, 긴 안목의 전향적인 복안을 가지고 가야 한다. 미사일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방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북한에 억류된 2명의 미국 기자 석방을 위한 협상을 구실로 전 대통령 빌 클린턴 수준의 특사 파견이다. 오바마 쪽에서 그런 구상을 먼저 제시하면 적극 지지할 준비를 하고 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무법자의 도발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보안관 없는 하이눈 상황이 오래 갈 수는 없다. 우리에게 사태의 주도권이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오바마 정부가 대북 정책을 본격적으로 가동해야 한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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