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제위기감 과장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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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원화의 가치가 급락 (달러에 대한 환율의 급등) 하고 이에 불안을 느낀 외국인 투자분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주식가격마저 무너지고 있다.

금융시장 전반에 짙은 먹구름이 끼여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불필요하게 공황이라고 위기감을 과장하는 것은 가장 피해야 할 일이다.

정부가 때늦게 대응해 초단기적인 처방으로 외환매입 규제를 발표한 것은 궁여지책에 불과하다.

그러나 기업과 개인이 정부 정책에 협조해 가수요와 투기수요를 억제하는 것은 사태진정에 도움이 되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다.

현상황의 본질은 지구촌 규모의 환율 상대평가과정이다.

원화가치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원화가치가 너무 빨리 떨어지는 충격 때문에 정부의 적극 개입에 의한 사태진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지만 이는 불가능한 일을 정부에 다그치는 것이다.

만약 정부나 중앙은행이 보유외환을 원화가치 방어에 잘못 사용하면 외국 투기자금의 게임에 말려들어 보유외환만 낭비하고 당초 목표도 달성할 수 없을지 모른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해외부문에서 자금을 제때에 빌려오는 것이다.

앞으로 두달간 외환위기가 오지 않도록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서 실물부문, 즉 올해 들어 경상수지 적자폭이 상당히 줄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원화가치가 급락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기아를 비롯한 대기업그룹의 부도확산에 대한 정부의 무원칙한 대응, 그리고 대선과정에서 불확실성의 증폭으로 국내보다 외국에서 한국 경제의 신인도를 낮춰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비판받을 대목은 시장경제의 원칙을 내세웠으면 책임지고 실행에 옮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점이다.

또한 금융개혁을 질질 끌어 외국 투자자의 눈에 한국 경제의 장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만들었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아무리 임기말이지만 이런 근본적인 체질강화를 위한 노력은 해야 한다.

급격한 환율상승에 따른 가장 큰 부작용은 역시 물가불안이다.

기업부도에 따른 금융부문에서의 통화증발을 재정긴축으로 균형을 맞춰 안정기조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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