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락 거듭하는 아시아증시, '환투기꾼 재공략설' 뒤숭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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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홍콩증시가 나락으로 빠져들면서 투자자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지난 23일의 폭락 이튿날 반짝 반등세를 보였던 홍콩증시는 월요일인 27일 항셍지수가 6백46포인트 하락한데 이어 28일 다시 1천포인트 이상 폭락하며 한때 9천선이 단숨에 무너졌다.

이날 홍콩증시 폭락의 직접적 원인은 미국의 주가폭락이다.

그러나 그 충격파는 홍콩이 훨씬 더 컸다.

홍콩의 산업은행 아시아금융유한공사 한건석 (韓建錫) 사장은 "다우지수의 하락이 홍콩에선 2배이상의 심리적 충격을 주고 있다" 고 표현했다.

앞으로의 전망도 어둡기 그지없다.

이미 아시아를 떠날 채비를 갖춘 미국계 투자자들은 보유주식을 현금화하는데 골몰해 있다.

여기에 지난 22일 대대적으로 홍콩달러를 팔아치우는 공략을 감행했던 국제적 환투기 세력들이 재차 홍콩달러 공략에 나섰다는 소문이 퍼져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크레디트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 투자은행의 니틴 파레크는 "홍콩달러가 하루빨리 안정돼야 상황이 나아지겠지만 헤지펀드의 계속적인 공격이 예상돼 문제" 라고 말하고 있다.

홍콩특구의 둥젠화 (董建華) 행정장관이나 경제살림을 맡은 재정사 도널드 창 (曾蔭權) 은 홍콩달러를 미국달러와 연계한 현제도는 변화가 없을 것이며 대신 금리를 올려 투기꾼들에 대응하겠다는 방침만을 거듭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홍콩뱅크 한 관계자는 "이미 홍콩인들 사이에 홍콩달러가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심리적 불안감이 팽배하기 시작한 것이 더 큰 문제" 라면서 "벌써 홍콩달러를 미국달러로 바꾸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다" 고 꼬집었다.

홍콩의 불안은 이미 체력을 소진한 동남아 증시를 더욱 짓누르고 있다.

28일 태국.필리핀.말레이시아등 동남아 국가의 증시는 5~6%의 하락세를 보였다.

경제가 튼실한 싱가포르.대만도 예외는 아니어서 6~8%의 폭락세를 면치 못했다.

이러한 아시아의 총체적 불안은 경제규모의 차원이 다른 일본마저 엄습하고 있다.

도쿄증시는 28일 닛케이 평균주가 1만7천엔대가 무너지는 폭락현상을 보였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이에따라 야마구치 미쓰히데 (山口光秀) 이사장 명의로 냉정한 투자를 호소하는 긴급담화를 발표하고 매매주문을 일부 제한하는 임시 주가안정조치를 취했지만 낙폭은 시간이 가면서 더욱 커져 전일대비 7백25.67엔 (4.3%) 하락한 1만6천3백12.69엔으로 마감했다.

닛케이 평균주가가 1만6천엔대로 떨어지면 은행.생명보험등이 보유한 주식들이 모두 평가손을 기록하게 돼 가뜩이나 막대한 불량채권을 떠안고 있는 일본 금융기관들로선 금융불안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미쓰즈카 히로시 (三塚博) 대장상이 "일본의 경제기반은 탄탄하다" 며 "중대한 관심을 갖고 상황을 주시해나가겠다" 고 밝히는등 일본 정부는 외견상 침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내심으론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터에 이번 사태가 심리적 불안사태를 초래, 일본경제를 더욱 어려운 국면으로 빠뜨리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일본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원인 (遠因) 을 미국경제의 장기호황과 달러화에 연관된 세계금융시장과의 괴리에서 찾고 있다.

다이와 (大和) 총합연구소는 "한마디로 미국경제만 놓고보면 달러화 강세는 이해되지만 달러화에 연동하는 환율체제를 가진 홍콩.동남아의 통화가 경제실력에 비해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것이 문제였다" 고 지적했다.

그결과 동남아.홍콩등 주변부 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도쿄·홍콩 = 이철호·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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