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출판계 단편소설 모음 '돌풍'…사랑·인간주제, 문학상도 휩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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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작은 그릇에 사랑이나 인생같은 큰 이야기를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담은 단편소설이라면 언제라도 인기를 끌 수 있다. "

겐도샤 (幻冬舍) 편집부의 주바치 (中鉢) 씨는 발매 1개월만에 10만부이상 팔린 단편소설집 '4U' (사진)가 인기를 끌고 있는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장편이냐 단편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뛰어난 작품성이 관건이라는 말이다.

오랫만에 문예물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출판계에서 가을바람을 타고 단편소설들까지 슬슬 고개를 들고 있다.

그동안 단편소설은 인기있는 장편소설의 그늘을 좀체 벗어나지 못했으나 요즘들어 발매부수가 10만부를 뛰어넘는 준베스트셀러 단편소설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인기작가 야마다 에이미 (山田詠美)가 쓴 '4U' 는 사랑과 연애를 주제로 한 9편의 단편을 모은 책으로 하반기 단편소설의 인기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 4월말 발매된 '철도원' (集英社.사진) 은 장편과 어깨를 나란히 겨루면서 베스트셀러 선두그룹을 유지하고 있는 단편집. 작가 아사다 지로 (淺田次郎)가 처음으로 낸 이 단편집에는 인간의 정이 물씬 풍기는 주옥같은 단편들이 8편 수록돼 있다.

이중 수작 (秀作) 은 단편집의 제목이 된 '철도원' .평생을 추운 동북지방의 시골역에서 보낸 노역장이 어릴 때 죽은 사랑하는 딸을 꿈속에서 만난다는 애정이 가득한 줄거리이다.

위장 결혼상대였던 중국인 여성이 사고로 죽은 후에도 계속 못잊어하는 비디오가게 주인의 이야기를 그린 '러브레터' 나, 어릴 때 바람이 나 집을 나가버린 비정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엘리트 상사맨의 이야기를 다룬 '각설하고' 등 다른 작품들도 단편소설의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하다는 평. 이 단편집은 현재 40만부이상 팔렸다.

아울러 장편소설이 독차지해왔던 각종 문학상이 단편소설 쪽에도 돌아가고 있다.

'철도원' 은 일본의 2대 문학상중 하나인 나오키 (直木) 상을 수상했으며, 다니자키 준이치로 (谷崎潤一郎) 상도 고도 (古都) 가마쿠라 (鎌倉) 를 무대로 서민들의 애환을 그린 미키 다쿠 (三木 卓) 의 단편 '골목길' (講談社) 로 돌아갔다.

그동안 일본 출판계는 장편소설 붐에다가 단편작가 부족현상마저 겹쳐 가치관이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에는 작은 분량에다가 완성도 높은 작품을 담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단편소설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인스턴트화되고 있는 요즘 추세에는 짧은 시간에 소설의 세계를 맛볼 수 있는 단편소설이 오히려 어울릴 것" 이라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도쿄 = 김국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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