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공기업화·법정관리 결정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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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기아사태가 99일만에 '법정관리의 길' 로 판가름났다.

이를 최종 결정한 지난 21일 저녁의 긴급회의는 시종 심각했다고 한다.

강경식 부총리를 비롯한 경제장관뿐 아니라 비경제부처 장관들까지 참석했던 것은 기아사태가 단순한 경제문제가 아니었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사실 강부총리나 김인호 경제수석은 기아에 대한 부도유예협약 적용이 끝나면서 법정관리 방침을 이미 확정지었다.

다만 정부나 채권단이 앞장서 법정관리를 밀어붙일 경우 파생될 사회 여론의 비난이나 정치권의 반발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것이다.

당초 계획으로는 이달말께 할 생각이었으나 주가 폭락과 환율 폭등으로 이어지는 금융시장의 혼란이 가중되면서 부랴부랴 일정을 앞당겼다는 것이 고위 당국자의 설명이다.

국감장에서 여야 의원들이 한 목소리로 "기아사태를 조속히 해결하라" 고 요구한 것도 정부의 결심에 한몫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대책의 핵심은 역시 법정관리에 들어가되 산업은행의 출자 전환을 통해 기아자동차를 공기업화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결정에는 몇가지 의도를 찾아낼 수 있다.

첫째는 산업은행을 앞세움으로써 정부가 기아문제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고리를 만든 셈이고 둘째, 산업은행을 대주주로 즉각 투입시킴으로써 법정관리 진행과정에서 파생될 대상기업의 표류를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의도는 국책은행을 끌어들임으로써 기아문제 처리의 아킬레스건이었던 제3자 인수 시비를 당분간 피해나갈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기아차의 법정관리를 3자 인수와 직결시키는 기아측이나 정치권.재계 일각의 반발을 감안, 일단 공기업 형태로 경영을 정상화한후 다음 정부가 처리방향을 결정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법정관리후 스스로 경영을 정상화하든지, 제3자가 인수해 정상화하든지 관여할 문제가 아니지만 음모론이 워낙 횡행, 오해를 없애기 위해 공기업화를 대안으로 택했다" 는 것이 재경원 당국자의 배경설명이다.

아시아자동차는 그동안 대우그룹등에서 인수의사를 밝힌 만큼 법원및 채권단과의 협의를 거쳐 3자 인수가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계열사들의 경우도 비슷한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아정공.모텍등 기아차의 핵심부품을 만드는 계열사들은 기아차와 한묶음으로 처리될 가능성도 있다.

파장이 워낙 컸던 만큼 남은 문제들도 적지 않다.

당장 기아 노조및 임직원들의 반발을 원만히 무마해야 한다.

이들은 이미 총파업 돌입을 선언하고 거리투쟁에 나설 방침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반발이 극한투쟁으로 연결될 경우 경제난국 타개를 바라는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선홍 회장의 뿌리가 깊숙이 박혀있었던 만큼 경영진 교체의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공기업 상태에서 돈이 돌고 대내외 신용도 회복되겠지만 자동차회사 경영에 정통한 전문경영인을 앉혀야만 정상화의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궁극적으로는 기아차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민영화' 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세계시장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한 업종의 하나인 자동차회사를 공기업 형태로 끌고가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 정부의 단안은 기아 차원을 떠나 전체 경제운용에 한결 숨통을 터줄 것으로 기대된다.

공식발표가 있자 폭락을 거듭하던 주가가 증시사상 최고의 폭으로 뛰어오르는가 하면 걷잡을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던 외환시장도 일시에 안정을 찾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증거다.

뒤집어 말하면 기아사태를 그동안 질질 끌어왔던 것이 전체 경제를 어렵게 만든 주된 요인이었다는 이야기다.

손병수.고현곤 기자

◇기아사태 일지

▶7월15일 = 기아 15개 계열사 부도유예협약 대상 지정

▶7월16일 = 기아, 자구계획 발표

▶7월22일 = 채권단, 김선홍회장 퇴진조건으로 1천6백억원 공동지원 합의

▶7월30일 = 채권금융기관 대표자회의 1차 연기

▶8월1일 = 채권금융기관 대표자회의 2차 연기

▶8월4일 = 채권금융기관 대표자회의서 부도유예기간을 9월29일로 결정

▶8월14일 = 이회창 신한국당대표, 기아자동차 방문해 회생지원 약속

▶8월20일 = 기아에 자구계획점검반 파견

▶8월24일 = 기아 임원 84명 감원

▶8월25일 = 김대중 국민회의총재, 정부에 기아지원 촉구

▶9월22일 = 기아그룹 전격 화의신청

▶9월26일 = 주요 채권은행장회의, 기아정상화에 '법정관리 유리' 결론

▶9월29일 = 채권단, 기아에 10월6일까지 법정관리냐, 화의냐를 선택하라고 통보

▶10월6일 = 기아, 화의고수 최종입장 채권단에 전달

▶10월22일 = 정부.채권단, 기아 법정관리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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