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이란에 3분 화해 방송 … 30년 앙금 풀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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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새로운 시작’을 제안했다. 30년간 이어진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대화와 협력을 통해 동반자 관계를 맺자고 주문했다. 그는 이란을 ‘악의 축’이라 부르며 정권 교체를 시사했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일방주의 외교 노선과 결별했음을 분명히 했다.

오바마는 20일(현지시간) 이란어로 자막을 넣은 3분35초 분량의 이란 신년 축하 메시지를 이례적으로 녹화해 일부 중동 지역 방송사들에 전달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란인들은 이란력(歷)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3월 21일부터 12일간 축하 행사를 연다. 오바마의 메시지는 백악관 웹사이트(whitehouse.gov/Nowruz)에서도 볼 수 있으며, 영어와 이란어로 된 메시지 전문도 게시돼 있다.

메시지에서 오바마는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약속하고 싶다”며 “미 행정부는 미국·이란 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교에 힘을 쏟고, 건설적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위협을 앞세우지 않을 것이며, 대신 정직하고 상호 존중에 기초해 대화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바마의 약속은 올 1월 20일 대통령 취임 이후 이란과의 갈등 해결을 위해 “강력하고 직접적인 대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보다 더 진전된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은 분석했다.

그는 “이런 관계가 쉽게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며 미국과 이란의 동반자 관계 구축이 쉽지 않을 것임을 인정했다. 이란은 핵 개발이 전력 생산을 위한 평화적인 목적이라고 주장하나, 미국 등 서방은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것이어서 국제사회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본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최근 “오바마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지지한 전임자 부시의 왜곡된 방식을 따르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미국이 이란과의 관계 개선에 힘쓰는 것은 미 외교 정책의 성패가 이란의 협력 여부에 달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잘 마무리하고, 팔레스타인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이들 지역에 영향력이 큰 이란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란과의 협력을 위해 미국은 이달 말 아프가니스탄에서 열릴 예정인 아프간 평화회의에 이란을 초청했다. 또 미국 외교관들이 사전 허락을 받아야 이란 외교관들을 접촉할 수 있도록 한 조치도 조만간 완화할 방침이다.

이란은 오바마의 화해 손짓을 일단 환영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언론 보좌관인 알리 아크바르 자반페크르는 20일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과거의 불화를 정리하자는 미국 대통령의 바람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오바마)는 말뿐 아니라 행동을 보여줘야 하며, 행동할 의지를 보인다면 이란 정부도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란 단서를 붙였다. 국제사회는 이란의 화답을 촉구했다. 하비에르 솔라나 유럽연합(EU) 외교정책 대표는 “이란에 손을 내민 오바마 대통령의 열망에 매우 기쁘다”며 “이란 정부가 현명하게 행동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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