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배짱부리는 '위기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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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의 잇따른 '위기 기업' 처리과정을 보면 뭔가 단단히 잘못됐구나 하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막판까지 사력을 다해야 할 당사자는 일찌감치 '나 몰라라' 나자빠지고, 반대로 정부.은행이 애가 타서 '제발 죽지말라' 고 부산을 떠는 현 상황은 마치 주객 (主客) 이 전도된 꼴이다.

뉴코아그룹 처리를 놓고 20일 하룻동안 진행됐던 반전 (反轉) 의 연속은 이런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선 뉴코아측 태도는 '과연 책임감을 느끼고 있나' 의문이 들 정도다.

부실경영의 근본 책임은 무리한 투자와 경영부재에 있다.

하지만 뉴코아측은 채권은행단이나 입점.납품업체에 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뉴코아측이 오후2시30분쯤 한국은행 기자실에 뿌린 보도자료의 골자는 '20~21일 돌아올 5백억원을 막을 수 없다.

은행이 도와주면 살고, 아니면 화의신청등 다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는 것이었다.

은행 마감도 끝나기 전, 부도를 막기 위해 뛰어야 할 시간에 '나는 모르겠으니 알아서 하라' 고 비춰질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날 아침 뉴코아 관계자를 만난 제일은행 관계자는 "대뜸 화의신청 얘기를 꺼내더라" 며 못마땅해 했다.

오후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채권은행장 회의때 보인 뉴코아측 태도도 무성의하다고 할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담보 자료조차 제대로 못 챙겼느냐" 는 재경원 참석자들의 고성이 회의장 밖에까지 터져나왔을까. 매장 임시휴업 조치도 입점.납품업체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배신감을 느낄만한 것이었다.

하긴 이런 상황의 책임은 정부.은행권에도 있다.

실컷 시장원리를 내세우다 막판이 되면 번번이 살려주는 '무원칙' 이 되풀이되니까 이젠 기업들이 그 수를 미리 읽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일 쌍방울그룹이 화의신청을 발표했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원이 결정돼 발표를 번복하는 해프닝이 있은 이후 이런 분위기는 더욱 확산되는 느낌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기업에 대한 신뢰감은 더 떨어지면서 경제는 더욱 엉망이 되고…. 요즘 업계에서는 '선거 전까지 버티면 산다' 는 말이 나돌고 있다.

앞으로 위기 기업은 계속 쏟아져 나올텐데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인지, 또 선거 후엔 어떻게 뒷감당하겠다는 것인지 걱정스럽다.

유상연 유통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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