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검찰의 독자적 판단" 강조…김대중총재 비자금 수사유보에 대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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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청와대는 비자금수사 유보에 대해 "검찰의 독자적 판단" 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쪽을 맡는 문종수 (文鐘洙) 민정수석은 물론 김용태 (金瑢泰) 비서실장.조홍래 (趙洪來) 정무수석은 "사전 의논이 없었다" 고 주장했다.

이처럼 공식적으로 김태정 검찰총장의 독자결정론을 뒷받침해주었다.

그럼에도 검찰 결정에는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의 뜻이 담겨 있다" 는 시각이 우세한 편이다.

대통령의 지시가 없는 가운데 검찰이 이 엄청난 사안에 대한 독자적 결정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일반론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는 비자금 폭로에 대한 金대통령의 부정적 인식을 우선 근거로 한다.

정치권에선 비자금의혹 폭로에 金대통령이 연관됐을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金대통령은 비자금 공세 시작때 보고받지 않았다는 것이 청와대측 얘기다.

한 관계자는 "60년대말부터 산전수전 다 겪은 김대중총재를 비자금으로 묶어두려는 발상은 턱없는 오산 (誤算) 이라는 것이 金대통령의 판단" 이라고 전했다.

그렇지만 金대통령은 비자금 공방에서 거리를 둔채 공개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 일각에선 겉으로는 金대통령이 비자금 공방으로 경제가 더욱 헝클어지는 상황이 되면서 관망자세를 버렸다고 주장한다.

이 관계자는 "수사중단은 金대통령의 결단으로 볼 수 있다" 고 설명했다.

金대통령의 이런 의중이 검찰쪽에 어떻게 전달됐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종구 (金鍾求) 법무장관.김태정총장이 최근 청와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또다른 관계자는 "극비리에 이뤄졌을 것이며, 청와대 참모들이 중간에 개입되지 않았을 것" 이라고 추측했다.

金대통령이 정말 왜 그랬을까에 대해선 몇가지 관측이 청와대및 신한국당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첫째, 이회창 (李會昌) 후보쪽에서 갑작스런 선회배경을 짚어본 결과는 국민회의쪽이 청와대측에 엄청난 압력을 행사했다는 관측이다.

여당 소식통에 따르면 김대중총재가 검찰에 소환되는 상황이 되면 국민회의가 사생결단식으로 金대통령을 걸고 넘어질 수 있음을 청와대에 강력히 전달, 金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라는 얘기다.

선거거부운동등 후유증을 곁들여 국민회의측이 청와대에 경고한 메시지를 金대통령이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둘째, 신한국당의 비자금 승부수가 쓸모없게 됐다는 점에서 金대통령이 李총재를 '불신임' 했다는 관측이다.

이는 여당내 후보교체론과 맞물려 미묘한 파장을 낳을 수 있는 대목이다.

金대통령은 김대중집권불가의 원칙에서 李총재를 도왔지만 李총재로서는 정권재창출이 어렵다는 현실을 마침내 인식, 손을 털었다는 분석이다.

검찰이 비자금수사를 중단하면 자연스레 여당내에 불붙은 후보교체론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계산도 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물론 "金대통령이 후보교체론에 관심없다" (김용태실장) 는게 청와대의 공식입장이다.

셋째, 金대통령이 92년 자신의 후보시절 자금문제로 비자금 파장이 비화될 수 있는 상황을 걱정하고 제동을 걸었다는 관측이다.

金대통령은 李총재가 92년 자금 문제로 연결지으려 하는데 언짢아했다는 것이다.

청와대에선 李총재쪽이 이 문제를 본격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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