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김대중총재 비자금 수사유보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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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 비자금 의혹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중단 결정은 검찰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로 검찰이 드러내 놓고 정치적 판단을 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김태정 검찰총장은 '수사유보' 라고 표현했지만 대선후의 이 사건 수사는 김대중총재의 당락에 관계없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검찰의 이번 결정은 현실적으로는 '수사포기' 로 봐야한다는게 중론이다.

특히 바로 전날인 20일 오후 고발사건을 대검 중수부 2과에 배당하고 주임검사를 발표하면서 중수부 1.3과까지 모두 수사에 투입하겠다고 수사계획을 밝힌 검찰이 불과 10여시간후 수사포기로 돌아선 것은 가장 큰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검찰이 수사중단 이유로 내세운 몇가지 점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그동안 검찰 내부에서조차 "이번 사건에 검찰이 개입하면 검찰이 선거를 망쳤다는 비난을 자초한다" "현직 대통령도 92년 대선자금에 발목이 잡혀 있는데 야당후보에 대해서만 검찰이 수사해서는 안된다" 는 목소리들이 많았다.

이와 관련, 검찰의 고위관계자들은 "신한국당 고발에 따라 수사기관인 검찰이 김대중총재 부분을 수사하는 것은 당연한데도 '왜 하필 우리만 수사하느냐' 는 국민회의측 목소리도 여론지지를 얻어가는 것이 검찰의 부담이었다" 고 검찰의 어려운 입장을 설명해 왔다.

결국 김총재 비자금의 전모를 밝힐 경우에는 야당탄압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고 수사를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로 몰릴 처지라는 진퇴양난 (進退兩難) 의 고비에서 '직무유기성' 수사중단 결정을 택한 것이다.

따라서 몇몇 검찰간부들은 "고발장이 접수된 사건을 여러 외부환경을 고려한 정치적 판단 때문에 외면했다는 점에서 총장의 결정은 검찰 본연의 자세에서 벗어났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 이라고 다소 난감해 하는 모습들이었다.

또 그동안 국민을 가치판단의 혼란상태로 몰고갔던 신한국당과 국민회의 사이의 비자금 공방이 검찰의 이번 결정으로 영원히 그 실체를 밝힐 수 없게 됐다는 '역사적인 책임' 도 문제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와 함께 검찰 관계자들은 "발표문 가운데 '수사를 하게 되면 과거 정치자금은 물론 15대 대선 후보들의 정치자금도 포함될 것' 이란 부분에서 어쩌면 이번 결정의 배경을 알 수 있을 것" 이라며 "현 시점에서 수사중단 결정의 가장 큰 수혜자는 김대중총재지만 장기적으로는 김영삼대통령을 위한 검찰 수뇌부의 포석일 수 있다" 고 해석하고 있다.

즉 김대중총재에 대한 수사중단 결정은 김영삼대통령 퇴임후 대선자금 부분에 대한 고발등이 들어오더라도 검찰이 수사하지 않을 수 있는 전례나 명분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태정총장도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사건은 한쪽만 (김대중총재를 지칭하는듯) 할 수 없다.

수사가 시작되면 야당도 당연히 (김영삼대통령을) 고발하지 않겠느냐" 고 말해 김영삼대통령 퇴임후 불어닥칠 것으로 예견돼온 92년 대선자금 부분이 이번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케 했다.

이 때문에 검찰 주변에서는 김총장이 청와대등의 정치적인 주문에 따라 내키지 않는 결정을 한 것 같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철근.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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