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소프라노 서혜연·김성은 '꾀꼬리의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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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지금 우면산은 단풍으로 타고 있다.

예술의전당으로 가는 길. 음악이 익어가는 소리와 함께 가을도 깊어간다.

세계무대에서 활약중인 소프라노 조수미.신영옥.홍혜경의 트로이카 아성에 도전장을 낸 두명의 차세대 소프라노. 주인공은 바로 서혜연 (34) 과 김성은 (32) - .

이들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만났다.

밀라노 베르디음악원에서 함께 성악가의 꿈을 키웠지만 요즘엔 오페라 출연일정으로 바쁘다보니 서로 얼굴 보기도 힘들다.

두살 언니뻘인 서씨는 성대 (聲帶) 진찰로 유명한 밀라노의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강질 (强質) 의 성대를 타고 났다” 고 칭찬한 소프라노. 가볍고 갸냘픈 음색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일색인 국내 성악계에 혜성같이 나타난 리리코 스핀토 소프라노다. 무겁고 강해서 드라마틱한 배역에 적합한 목소리다.

지난해 9월 로마에서 목소리를 들어본 지휘자 정명훈 씨가 '풍부한 성량과 뛰어난 표현력을 겸비한 성악가' 로 추천, 2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오페라 아리아만으로 프로그램을 꾸며 첫 독창회를 갖는다.

02 - 580 - 1234. 서씨는 지난해 2월 이탈리아 파도바 폴리니극장에서 한국인 최초로 유럽무대에서 투란도트역을 맡아 기대주로 떠올랐다.

TBC 어린이합창단 출신으로 예원.서울예고를 거쳐 84년 서울대 3년때 오페라 '예프게니 오네긴' 의 주역으로 출연했다.

서울대 재학시절 테너 박인수교수는 서씨의 노래를 듣고 '황금의 목소리' 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졸업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선발돼 유학을 떠났다.

“워낙 무대체질이라 떨리는 것은 없어요. 하지만 가끔 고달플 때는 애견과 함께 산책도 하고 틈틈이 숨겨둔 피아노 실력을 닦기도 합니다.”

현재 이탈리아 손드리노음악원 교수로 있는 서씨는 89년 쿠르트 바일의 오페라 '마하고니' 의 주역으로 데뷔한 후, 밀라노 나비부인콩쿠르 우승에 이어 베르디의 '아이다' , 마스카니의 '카발렐리아 루스티카나' 등에 출연해왔다.

한편 가볍고 서정적인 음색의 리리코 레제로 소프라노인 김씨는 국내 청중에게 그리 낯선 편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리골레토' 의 질다역으로 출연한데 이어 12월 KBS교향악단의 베토벤 '장엄미사' 로 두차례 국내무대에 섰다.

내달 7~10일 국립오페라단 (02 - 271 - 1745) 의 창작오페라 '아라리' (최병철 작곡) 의 주역을 맡아 연습중인 그는 국내오페라단의 주역 캐스팅 물색대상 제1호로 손꼽힌다.

김씨에게 지난 8월14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 오전12시쯤 전화를 받고 자동차를 몰아 베로나로 달려간 것. 컨디션이 나빠 출연이 불가능한 프리마돈나 대신 '리골레토' 의 질다역을 맡아달라고 통보를 받은지 7시간 만에 베로나 야외극장 무대에 섰다.

질다역이라면 언제라도 무대에 설 준비가 돼 있지만 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큰 오페라 무대로 손꼽히는 베로나 야외극장이 아닌가.

대타 (代打) 로 등장한 김씨는 멋진 '홈런' 을 날렸다.

그후 프랑크푸르트 오페라등 각지에서 출연제의가 빗발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부산대와 이탈리아 오지모아카데미, 베르디음악원을 졸업한 그는 87년 대구전국성악콩쿠르 1위, 91년 비냐스콩쿠르 우승에 이어 92년 비오티콩쿠르 2위, 96년 도밍고콩쿠르 1위에 입상했다.

지난 93년 트레비소 오페라콩쿠르에서 우승, '몽유병의 여인' 중 아미나역으로 데뷔한 그는 지난 3월에는 오페라의 명문 베네치아 라 페니체극장에서 '팔슈타프' 의 나네타역을 맡았고 7월엔 스페인 라스팔마스에서 '후궁으로부터의 유괴' 의 콘스탄체역으로 출연했다.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를 가장 존경해요. 오페라 가수라면 목소리 못지 않게 자기를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현재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남미에서 활동중인 그는 내년초 인터넷에도 개인 홈페이지를 개설할 예정. 더 넓은 세계무대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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