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타나모 포로 옷 벗기고 군견 위협' 럼즈펠드가 한때 승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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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쿠바 관타나모 기지 내 구금자들의 옷을 벗기고 군견을 이용해 위협하는 행위를 한때 승인했었다고 AP통신이 22일 보도했다. 이는 미 행정부가 2002년 1월부터 2003년 4월까지 관타나모 기지 구금자들에게 적용하도록 승인된 심문 기법들을 기록한 메모를 백악관이 공개하면서 드러났다. 관타나모에는 600여명의 테러 혐의자가 수용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모에 따르면 럼즈펠드 장관은 2002년 12월 2일 관타나모 기지 구금자들에 대해 ▶20시간 마라톤 조사▶알몸 만들기▶군견을 이용한 공포감 조성▶종교용 기물 같은 편한 느낌을 주는 물품 박탈 등 '개인적 공포를 이용하는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이 과정에서 럼즈펠드 장관은 '나는 하루 8~10시간씩 서있을 수 있는데 왜 (포로들을 서있게 하는 시간을) 4시간으로 제한하는가'라는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2003년 1월 15일 이 승인내용을 일단 철회했으나 재검토를 거쳐 4월 16일 다시 승인했다. 재승인된 내용은 '제네바협약을 준수하는 선에서' 사용되도록 규정된 24가지 심문 기술이었다. 이 중에서 구금자의 옷을 벗기는 행위는 제외됐다. 고문 금지에 관한 국제협약을 위반하는 것일 수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통신은 "럼즈펠드 장관이 재검토를 지시한 것은 문제의 심문 기법이 '너무 심하다'고 느낀 군내 법률가들의 반대 의견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메모 중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2년 2월 7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체포된 알카에다 요원들에 대해 '제네바협약에 따라 인도적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언급한 내용도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메모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은 (포로 대우에 대한) 새 패러다임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며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알카에다에 대해)제네바협약의 효력을 잠정 중지시킬 수 있다는 법무장관의 결론을 수용하지만, 현 시점에서 이 권한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메모를 공개하기 직전 "나는 결코 고문을 지시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지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신은 "백악관은 부시 행정부가 알카에다 포로에 대한 고문을 허락했다는 주장을 희석시키기 위해 메모를 공개했지만 역효과가 났다"며 "이는 부시 행정부가 포로에 가하도록 승인한 일부 행동이 선을 넘은 것이었다는 사실이 메모를 통해 새롭게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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