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청론]정치엔 '공정거래법'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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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는 최근 기업인들이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는 행위에 대해 강도높은 제재를 가하기로 회원국간 의견을 모았다.

OECD는 지하경제를 근절하기위해 진작부터 돈세탁에 관한 규정을 강화해왔다.

그러나 지하경제와 관련해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이 뇌물이냐, 어떤 행위가 돈세탁이냐 하는 점이다.

우리 정치권의 경우만 하더라도 정치자금, 비자금, 후원금, 격려금, 뇌물, 브로커 수고비등 보통사람들이 보기에는 다 똑같은 말인데 마치 다른 말인 것 처럼 사용되고 있다.

정치인들은 용어를 다양하게 구사할 줄 하는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정치권은 야당총재의 비자금사건으로 떠들썩하다.

그러나 국민들은 의외로 담담한 것 같다.

아니면 이미 계산을 다 끝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치권이 사생결단을 내는 와중에 득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고 불황때문에 경제만 멍이 들어가고 있다.

경제전체의 불황도 문제지만 금융시장이 불안한 것은 특히 신경을 써야한다고 본다.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80년대 초 이후 은행도산등 금융불안이 있었던 14개국은 금융위기 때문에 적어도 국민총생산 (GDP) 의 10%이상을 손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도 최근 한보, 기아등 대형 부도사태가 터지면서 금융권이 흔들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GDP의 10%면 1인당 국민소득이 1천달러는 날아가는 셈이고 총액으로는 450억달러가 넘는 엄청난 금액이다.

연방준비은행은 금융위기는 정책실패라는 점에서 이를 정책실패의 비용이라고 분석했다.

정치권에서 고작 (?) 1천억원의 비자금을 가지고 싸우는 동안 우리경제는 수십조원의 국민소득을 그 비용으로 치르고 있는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여야간 폭로전 보다 정책대결이 이루어져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정당들이 정책대결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서로 정책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이것은 정당과 기업을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기업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정당은 표를 많이 얻어야 한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여러사람이 다 좋아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

왼손잡이를 위한 골프채, 노인을 위한 침대따위를 만들어서는 큰 돈을 벌 수가 없다.

그러니 정당마다 정책이나 색깔이 비슷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최근의 폭로전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제는 누가 당선되어도 간신히 당선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 이래야 국민 무서운줄 알고 제왕적 대통령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도자에 대한 여론지지가 8, 90%쯤 되면 그 지도자는 환상에 젖어 역사에 남을 업적만들기에 골몰하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이제 국민의 뜻을 잘 헤아릴 겸손한 대통령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폭로전의 방법은 여야 모두 너무 점잖지 못하다.

실물경제에서는 과대, 허위포장이나 경쟁자 비방은 모두 공정거래법에 의한 제재대상이다.

정치도 국민을 상대로 한 서비스업이라고 볼 때 공정거래법의 적용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유한수 소장<포스코 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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