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피랍에 긴장 감도는 평화의 마을 대성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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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맑게 갠 가을날 누렇게 잘익은 벼를 추수하며 넉넉한 농심 (農心) 을 가꾸던 민통선 북쪽 경기도파주시군내면조산리 대성동마을에 비상이 걸렸다.

추수도중 막걸리를 곁들인 점심을 마치고 잠시 틈을 내 도토리를 줍던 모자 (母子) 를 북한군이 납치, 남북한이 일촉즉발의 긴장상태를 맞았지만 대성리마을 주민들은 침착하고 용감했다.

남북의 어느쪽이라도 방아쇠만 당기면 사태가 어떻게 번질지 모를 일이었으나 다행히 총격전은 없었다.

…납치된 홍승순 (66.여) 씨 집에는 홍씨의 손녀 김다정 (11.대성동 초등4).주영 (9).소영 (5) 양등 세자매만 남아 어른들이 빨리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와 삼촌의 납치소식을 전해들은 다정양은 "할머니가 부천에서 다니러온 삼촌과 함께 아침 일찍 논에 나갔는데 북한사람들이 빨리 돌려보내줬으면 좋겠다" 며 울음을 터뜨렸다.

부천에서 집을 지키고 있던 김용복씨의 아들 (13) 도 "아빠가 할아버지 농사일을 돕기 위해 아침 일찍 대성동마을에 갔다" 면서 "일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오신다고 했는데…"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대성동마을은 이웃주민 2명이 북한군의 억류상태에 빠지자 즉각 관.군과 함께 발빠르게 대처. 주민들은 사건이 발생하자 즉각 현장에서 12㎞쯤 떨어진 경기도파주시 군내출장소에 나름대로 파악한 상황을 자발적으로 보고하느라 출장소 전화가 한동안 마비될 정도. 그러나 제보자마다 알리는 상황의 차이가 커 출장소 직원들이 한때 상황파악에 애를 먹기도.

…사태가 발생하자 유엔군사령부 소속 민정반과 파주시 군내 출장소측은 이 일대에 거주하는 51가구 2백27명 전원에게 귀가해줄 것을 요청. 그러나 주민들은 이미 사태발생 직후 귀가해 출장소등에 상황을 알리는 한편 대성동마을 밖에 사는 친인척들에게도 '안전신호' 를 보냈다는 것. 또 27명이 다니고 있는 대성동초등학교도 즉각 휴업에 들어가 이 마을은 사태발생 직후 정적에 싸였다는게 군관계자들의 설명.

…대성동마을 주민들은 북한군이 도토리를 줍던 주민 2명을 납치한 사건이 일어나자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는 이 마을 주민들은 군 (軍) 측의 안내방송을 듣고 귀가한 뒤 가족들과 함께 팽팽한 긴장 속에 사태의 추이를 살폈다.

정제원·고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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