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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도]67.음악 지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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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박수갈채를 받으며 무대에 등장하는 지휘자 - .대중스타 못지 않는 인기를 누리지만 이탈리아 작곡가 부조니의 말처럼 '음악을 싫어하는 허영심 많고 오만한 반란군들을 제압하는 일' 때문에 언제나 골머리를 앓게 마련이다.

바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다.

지휘자가 다루는 악기는 관악기와 현악기의 집합체인 오케스트라, 더 정확히 말하면 이들 악기를 연주하는 단원들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음악성 못지 않게 인간관계와 리더십이 중요하다.

지휘자에게 문제는 30대 후반이 되어서도 '자신의 악기' 즉 오케스트라를 좀처럼 만질 기회가 없다는데 있다.

'신동 지휘자' 라는 말이 없는 것도 이 때문. 대부분이 바이올린.피아노.작곡을 전공하다 지휘로 방향을 바꾼 사람들이다.

뒤늦게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너나없이 지휘에 손대는 경향도 있다.

지휘자에는 교향악단 운영에 전권을 행사하는 음악감독 또는 상임지휘자에서부터 전임 (專任) 지휘자.객원지휘자.부지휘자등 여러 직급이 있다.

상임지휘자는 주로 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를 지휘하며, 프로그램.리허설.연주는 물론 협연자 선정과 단원 위촉.해임에 관한 권한을 부여받는다.

운영자문위원회의 제안도 수렴하는 편이지만 최종 결정권은 상임지휘자의 몫이다.

상임지휘자는 교향악단이 상주하고 있는 도시에 거주하는 것이 원칙이나 최근 교통수단의 발달로 두개 이상의 교향악단을 맡는 지휘자들이 늘어나고 전체 프로그램의 3분의 1정도만 상임지휘자가 맡는 경우가 많아져 꼭 그렇치만도 않다.

국내 지휘자 제1호는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의 홍난파 (洪蘭坡.1888~1941) 씨. 1936년부터 KBS의 전신인 경성방송국 (JODK) 관현악단의 지휘자로 활동, 39년 7월 모차르트의 '주피터 교향곡' 을 지휘했다.

당시 단원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계정식 (桂貞植.1904~74) 씨는 46년 교려교향악단을 창단, 그해 2월 제1회 정기연주회에서 모차르트 교향곡 제26번,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등을 지휘해 교향악계에 선구적 발자취를 남겼다.

국제무대에 진출한 첫 지휘자는 '애국가' 의 작곡자인 안익태 (安益泰.1906~65) 씨. 신시내티 음악원에서 수학한 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사사했다.

베를린필.빈필.런던필을 객원지휘했으며 스페인 마요르카 교향악단 초대 상임지휘자를 지냈다. 고려교향악단 비올라 주자였던 김생려 (金生麗.19?

?~95) 씨는 46년 서울관현악단 창설, 영화관 연주 등으로 클래식의 대중화를 표방했다.

나중에 서울교향악단으로 개칭한 이 오케스트라는 서울시향으로 탈바꿈했다.

국내 교향악운동의 산 증인으로 손꼽히는 임원식 (林元植.78) 씨는 제대로 지휘공부를 한 최초의 지휘자. 하얼빈 음악학교에서 피아노, 일본고등음악학교에서 작곡, 줄리아드 음대에서 지휘를 공부했다.

지난해 지휘 데뷔 50년째를 맞은 그는 '언제때 임원식인데 아직도 지휘를 하느냐' 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56년 KBS교향악단의 전신인 국립교향악단을 창단, 15년간 초대 상임지휘자를 지냈으며 84년부터 92년까지 인천시향 초대 상임지휘자를 지내고 현재 서울아카데미오케스트라 명예상임지휘자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김만복 (金萬福.71) 씨는 미국 오클랜드 심포니 부지휘자를 지냈으며 61~70년 서울시향 상임지휘자를 거쳐 84~90년 KBS교향악단 총감독을 역임했다.

KBS교향악단 운영위원을 거쳐 현재 교향악단 자문위원장으로 있다.

85년 국내 최초의 민간직업교향악단인 코리안심포니를 창단, 현재 예술감독으로 있는 홍연택 (洪燕澤.70) 씨도 지휘봉을 놓지 않는 노익장. 서울시향.KBS교향악단 부지휘자를 거쳐 72~81년 국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지냈다.

당시 국내 무대에서는 낯설었던 말러.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 한국 창작곡도 자주 연주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89년과 이듬해 잠실체육관에서 안익태의 '코리아 환타지' , 베토벤의 '합창교향곡' 으로 꾸며진 '5천명 대합창 연주회' 를 기획.지휘해 국내 최대 규모의 음악회로 기네스북에 오른 지휘자가 됐다.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지휘를 전공하고 71년부터 서울시향과 인연을 맺어온 정재동 (鄭載東.69) 씨는 서울시향의 편성 확대 등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86년부터 88년까지 국립교향악단, 94년부터 2년간 서울시향 상임지휘자를 지낸 원경수 (元京洙) 씨도 의욕적인 레퍼토리로 국내 오케스트라의 지평을 넓혀 놓았다.

이들은 모두 현재 서울시향 명예지휘자로 있다.

미국과 국내를 오가며 활동중인 곽승 (郭昇.55) 씨는 미 텍사스 오스틴교향악단과 부산시향 상임지휘자를 겸임하고 있다.

지난 8월 부산시향을 이끌고 카네기홀 데뷔공연을 성공리에 이끌어 지방 교향악단의 위상과 수준을 한 차원 높여놓았다.

국립교향악단 바이올린 연주자로 출발, 지휘자로 변신한 박은성 (朴恩成.52.한양대교수) 씨는 단원 출신답게 오케스트라의 생리를 잘 아는 중견. 빈국립음악원에서 지휘자 쿠르트 뵈스를 사사했다.

84년 서울시립청소년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거쳐 92~94년 서울시향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국내 무대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지휘자는 역시 금난새 (50.수원시향 상임지휘자) 씨. 특히 청소년과 주부층에게 인기가 높다.

베를린 음대에서 지휘를 전공한 후 77년 카라얀 지휘콩쿠르에 입상한 그는 81년부터 11년간 KBS교향악단 전임지휘자를 지냈으며 뜻한 바 있어 수원시향에 정착했다.

'아이디어 뱅크' '흥행.기획의 천재' 로 불리는 그는 국내 최초로 6시간짜리 마라톤 콘서트를 시도했으며 '금난새와 함께 떠나는 세계의 음악여행' 이라는 청소년 음악회를 공연상품으로 내놓아 전석매진의 신기록을 낳았다.

올해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정명훈 (鄭明勳.44) 씨는 74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2위에 입상한 피아니스트 출신 지휘자. 12세때부터 지휘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그는 71년에 이미 국립교향악단을 지휘한 경력이 있고 같은 해 줄리아드 음대 예비학교 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임명되었다.

76년 12월 뉴욕 청소년교향악단을 지휘한 그는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이끄는 로스앤젤레스필 부지휘자로 6개월만에 정기연주회를 지휘하는 행운을 누렸다.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음악감독을 지낸 그는 현재 로마 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겸임하고 있다.

'바흐와 쇤베르크의 밤' '바르토크의 밤' '베베른 50주기 음악회' 등의 기획을 통해 대중에게는 낯선 현대음악을 연주해 음악계에 충격을 주었고 국내 교향악단으로는 처음으로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에 도전했던 임헌정 (林憲政.44) 씨는 85년 KBS교향악단 부지휘자를 거쳐 88년 부천시향 초대 상임지휘자에 취임했다.

林씨의 영도력에 힘입어 부천시향은 KBS교향악단.서울시향.코리안심포니와 어깨를 겨루는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밖에 김덕기 (金德基.43.서울대교수).최승한 (崔乘韓.47.연세대교수).김정수 (金正帥.41) 씨 등이 오페라 무대에서 활약중이며,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객원지휘자로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전곡을 녹음중인 유종 (兪淙.41) ,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음악원을 졸업한 후 최근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에도 진출한 정치용 (鄭致容.40.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씨가 40대 초반 지휘자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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