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기후변화' 뜨거울 12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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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 교토 (京都) 는 우리의 경주 같은 고도 (古都) 다.

이 고도에서 오는 12월 전세계 1백50개국 이상이 모여 다자간 대혈투를 벌인다.

이른바 이산화탄소를 감축하는 부적 (符籍) 의 출현이다.

당초 92년 리우환경회의에서 기후변화 협약이 채택될 때부터 이 협약은 메가톤급 폭발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됐었다.

경제활동의 주에너지원인 석유.석탄 사용을 줄여야 하는 문제기 때문이다.

현재의 감축 강경세력은 아무래도 유럽쪽이다.

2010년에 1990년 대비 15%를 줄이자는 주장의 이면엔 안정적인 경제 및 산업구조 속에 석탄.철강 등 이산화탄소 다배출 산업이 퇴조 기미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일본.캐나다 등 비 (非) 유럽연합 (EU) 선진국은 유럽의 목표를 따르기엔 역불급이다.

울며 겨자먹기로 5%의 감축목표를 최근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선진국내에서도 부존자원 및 산업구조에 따라 입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EU든, 비EU든 선진국이 공동으로 목청을 높이는 것은 개도국들에도 의무를 지우자는 것이다.

그것도 한국이나 멕시코 같은 후발선진국에 대한 의무 강화는 무엇보다 뜨거운 이슈가 될 전망이다.

그뒤에 따라올 중국.인도.남미.동남아의 30억명에 대한 중요한 선례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입장처럼 난처한 경우가 또 있을까.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에너지 소비 증가율은 과거 세계 1위를 기록한 적도 있고 현재도 4~5위권에 랭크돼 있다.

비산유국끼리 비교해봐도 동일한 부가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소비하는 에너지 사용도 일본의 3배 가까이 된다.

또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에 이미 가입했기 때문에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해도 할 말이 없다.

피하고 싶지만 만약 선진국 의무를 지게 된다거나 다소 완화된 의무를 진다 하더라도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을 초월할게 분명하다.

선진국의 기준연도인 1990년이 아닌 2000년을 기준으로 동결한다면 2010년에는 예상대비 32%를 감축해야 한다.

철강.화학.자동차 등 에너지 다소비산업의 침체는 불보듯 명확하다.

우리 대표단이 교토에 가는 발걸음이 가벼울 수 없는 이유들이다.

다소 엉뚱할지 모르지만 원론으로 돌아가 과연 기후변화 협약에 대한 우리의 협상전략과 감축목표 및 수단에 대한 심각한 고려가 있었는지 당국에 묻고 싶다.

고도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다거나, 당신네 선진국들이 서비스산업에 주력하는 동안 어디에선가 했어야 할 중화학공업을 떠맡느라 할 수 없이 에너지 다소비국이 됐다는 논리는 왠지 설득력이 약하다.

이제 짧게는 교토까지 한달 반, 길게는 2010년까지 13년의 시간이 우리 앞에 있다.

곧 무대에 올라갈 배우가 화장도 안하고 그저 안불러 줬으면 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어서는 안되겠다.

엄밀한 현실분석과 예상을 토대로 단기적으로는 2000년까지의 협상전략을, 장기적으로는 감축목표를 어떻게 설정할지 결정해야 한다.

일차적 단기목표는 선진국 명단의 재조정엔 빠지고 개도국의 의무 강화엔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전략이다.

그 반대의 결과를 생각하면 이 전략이 국가적 효용을 극대화하는 길이 된다.

보다 장기적으로 전략을 검토할 때 주의해야 할 세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로 정책수립에 모든 이해관계자의 참여 확대다.

주인정신을 가진 모든 관계인의 자발적 참여는 바로 정책의 성패와 직결된다.

둘째로 장기실천계획의 수립이다.

과학적.경제적.기술적 분석에 기초한 장기계획과 증빙 가능한 보고.감사체제 등이 갖춰져야 한다.

셋째로 달성 가능하면서도 도전할만한 목표치의 설정이다.

특수한 여건을 감안하지 않은 일률적인 목표치는 선발.후발주자 모두에게 참여 동기를 일으킬 수 없다.

이상의 세가지는 분리적이 아닌 상호 조화를 이뤄야 할 일련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지속적으로 정책목표를 달성하고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산업계.소비자를 포함한 자발적인 실천프로그램 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황진택 <삼성지구환경硏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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