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대법관 메일, 재판 독촉으로 읽힐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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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철 대법관이 12일 서울 대법원 제2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신 대법관은 “법대로 하자고 했을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법원행정처장인 김용담 진상조사단장은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 관여로 볼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대법원 진상조사단은 16일 “법원장이 재판 독촉으로 읽힐 수 있는 e-메일을 반복적으로 보내고 판사들이 실제로 그렇게 느꼈다면 재판 진행에 관여한 것”이라고 밝혔다. 신영철 대법관이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원장 때 판사들에게 보낸 e-메일이 ‘재판 관여’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복 메일에 부담 느껴”=진상조사단은 지난해 10월과 11월 신 대법관과 서울중앙지법 형사 단독 판사들 사이에 있었던 일을 조사했다. 10월 9일 촛불 시위 재판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박재영 판사가 야간 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제청을 한 이후의 상황이다.

신 대법관은 “위헌 여부에 상관없이 소신에 따라 재판을 빨리 진행하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런 취지의 발언과 e-메일 등이 판사들에게 전해졌다.

조사단은 신 대법관의 전화 통화, 회의 석상의 발언, e-메일(10월 14일, 11월 6일, 11월 24일자) 내용과 이에 대한 판사들의 반응을 조사했다.

조사단은 두 개의 사안에서 신 대법관의 재판 관여를 인정했다. 신 대법관이 촛불 시위 관련 보석 신청 사건을 맡은 한 판사에게 휴대전화를 걸어 “시국이 어수선할 수 있으니 보석을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한 발언이다. 조사단은 “특정 사건의 보석 재판에 관해 언급한 것은 재판 내용에 관여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신 대법관이 10월 13일 회의 이후 세 차례 e-메일을 보낸 것도 재판 진행에 관여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일부 판사들이 “재판 진행을 독촉하는 의미로 이해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조사단은 “상당수 판사들이 ‘사법행정권의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고 말했지만 일부 판사들이 실제로 심리적 부담을 느꼈다면 재판 진행에 관여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고 결론 지었다.

조사단장인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은 “재판 관여는 실제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더라도 객관적·외형적 위험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법 행정 남용 안 돼”=조사단은 “사법 행정은 법관의 독립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고 밝혔다. 법원장 등 사법행정 감독권자는 법관에 대해 직무 감독은 가능하지만 재판의 내용이나 절차 진행에 구체적 지시나 방향 제시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사단은 촛불 시위 재판의 배당 과정에서 사법 행정권이 남용됐다고 설명했다. 재판부 지정 기준이 모호하고 납득할 설명을 하지 못하는 등 ‘배당 주관자의 임의성이 배제되는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배당 예규의 취지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조사단은 지난해 10월 신 대법관이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을 만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처장은 “신 대법관도 ‘불쑥 찾아갔기 때문에 이 소장이 잘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며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얘기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승현·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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