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메랄드 궁전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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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온몸이 녹색으로 물든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녹색 손을 들어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뒤로 쓸어넘겼다.

그런 뒤에 녹색 입술로 내 이마에 입맞춤을 했다.

그녀의 가슴에 무너지듯 안기며 나는 정신이 점점 더 혼미해지는 걸 느꼈다.

"나는 추억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예요. 다만…" 그녀의 젖무덤에 얼굴을 묻고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자 그녀가 손가락 하나를 나의 입술에 갖다대며 쉿, 하는 소리를 냈다.

깊은 현기를 느끼며 나는 가까스로 눈을 뜨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온몸이 지층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현기를 느끼면서도 나는 안간힘을 다해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그리고 아침이슬에 젖은 풀잎처럼 촉촉한 감촉을 느끼며 오래오래 그녀의 입술을 탐닉했다.

"나를 원하세요?" 나의 귓전에다 그녀는 젖은 입김을 불어넣었다.

말없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가 소파의 등받이에다 나를 기대게 하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내게 등을 보이고 검정 원피스의 뒷부분에 달린 지퍼를 내려 달라고 했다.

자세를 고쳐 앉으며 나는 손을 들어 지퍼를 내렸다.

그러자 주르륵, 물이 흘러내리듯 원피스가 한순간에 밑으로 흘러 내렸다.

놀랍게도 여자는 원피스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녹색의 알몸. 나는 잠시 꼼짝도 하지 않고 그녀의 알몸을 올려다보았다.

몸매의 윤곽선 안쪽에서 부드럽고 자연스런 음영이 생겨나 팽팽한 탄력과 질감을 느끼게 햇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그녀의 젖가슴에 갖다댔다.

그러자 아, 하는 탄성을 터뜨리며 그녀가 선 채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살아서 출렁거리는 물결처럼 그녀의 온몸이 굼실거리는 것 같았다.

그 부드러운 율동을 따라 나의 심신은 빠르게 가열되기 시작했다.

움직이지마. 제발 움직이지 말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원하며 그녀의 온몸을 애무해 나갔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몰두하고 있는 한없는 얇은 환상의 피막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한 것이 었다.

하지만 어느 한 순간, 부주의한 동작 하나로 인해 그녀의 실체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긴장감 때문에 나의 흥분은 더욱 고조되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가면을 벗고 싶어요. 불으 끄면 안될까요?" 어느 순간인가, 그녀가 나의 머리를 감싸쥐고 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안돼. 그러면 모든게 사라질 거야. 그러니까 가면도 벗지 말고, 불도 끄지마. " 고개를 들고 그녀를 올려다보며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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