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살 충격] 정부 망연자실…추가 파병 '먹구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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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봉길 외교통상부 대변인이 23일 새벽 김선일씨 사망에 대해 정부 공식 발표를 하고 있다.[TV촬영]

정부는 이라크 내 테러단체에 납치된 김선일씨가 처형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충격에 휩싸였다. 전날 알아라비야 방송을 통해 테러단체가 협상 기한을 연기한다는 보도가 나온 뒤 정부 내에 일던 기대는 산산조각났다. 특히 김씨 석방을 위해 전방위 교섭을 벌이던 외교부는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김씨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파병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사회에 약속한 파병을 민간인 테러에 굴복해 중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교민의 희생은 고통스럽지만 이제 와서 파병을 철회했다가는 국제사회에서 더 큰 희생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테러에 굴복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위신이 추락할 뿐이다. 여기에 한국인이 제2, 제3의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 국방부 관계자도 "특전사에서 훈련받은 자이툰 부대원들에게 이제 와서 원대 복귀 명령을 내릴 수는 없다"고 잘라말했다.

그러나 무고한 한국인이 이라크에서 살해당한 충격으로 향후 파병부대와 교민 안전에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 교민을 살해한 무장단체는 이라크 내 아랍 수니파 극단 테러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외교.국방당국 분석에 따르면 아랍 수니파와 쿠르드족은 대립 관계다. 수니파가 주도했던 후세인 정권 시절 쿠르드족 수만명이 정권에 의해 살해당했다.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자 수니파는 이라크 일대의 이른바 '수니파 삼각지대'를 거점으로 미군을 상대로 치열한 저항을 벌여 왔다. 반면 쿠르드 자치정부는 '친미' 정책으로 이라크전 시작부터 미군과 협조해 왔다. 극단 수니파 테러조직은 한국의 쿠르드 재건 지원을 친미 부역세력과의 협조로 선전할 수도 있다.

재건 지원을 통해 이라크 안정화에 기여하겠다는 한국군의 활동은 당분간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자이툰 사단은 재건 지원이 목적이라고 단언했다. 재건 지원은 주민 접촉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테러로 파병 활동의 최우선 순위는 군과 교민, 업체의 안전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합동참모본부는 재건 지원 때 국제기구나 한국인 비정부기구(NGO)와의 협조를 준비했었다. 군만으론 안 되고 한국 업체와 NGO의 유기적인 협조 체제가 마련돼야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가 가능하다고 내심 판단했다. 하지만 교민 테러로 이런 기대는 일단 무산됐다.

이번 사건은 국내적으론 파병을 둘러싼 여론을 더욱 분열시킬 전망이다. 파병 반대론자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국회에 제출되는 파병 철회 결의안이 어떻게 처리될지는 특히 주목된다. 여기에 이라크 주둔 미군이 김씨 피랍에 관해 제때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 자칫 이번 사건은 대미 여론을 다시 악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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