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경제신간]"일본의 대미무역교섭" 다니구치 마사키 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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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자동차시장 개방과 미국이 한국을 슈퍼 301조에 따른 우선협상대상국관행으로 지정하면서 한.미간 줄다리기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미국과의 통상마찰에 관한 경험 (?)이 많기로는 일본을 빼놓을 수 없다.

섬유에서 시작해 철강.칼라TV.자동차.반도체.공작기계등 일본은 그동안 미국과 온갖 부문에서 크고작은 통상마찰을 경험했다.

지난달 도쿄대학 다니구치 마사키 (谷口將紀) 교수가 펴낸 '일본의 대미무역교섭 (도쿄대학 출판회 발간)' 은 70년대 이후 미.일 통상마찰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은 구체적인 사례 분석을 통해 양국의 정치가.관료.언론의 대응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바뀌어졌는가를 분석하는 것을 기본틀로 삼고있다.

다니구치교수는 일본의 전후 (戰後) 시스템, 즉 대외의존적 체질이 미.일 통상마찰의 기본적인 배경이라고 본다.

집중호우식 수출.폐쇄적 국내시장 정책은 미국을 자극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지적이다.

미.일 통상마찰 과정은 반복적이다.

업계의 이해를 대변하는 미국 의회의 보호주의 압력→일본 정부에 미국 행정부의 요구안 제시→일본측의 전면 거부→미국의 외압 강화 (무역제재조치등)→일본의 양보→절충적 타협이라는 공통적 패턴이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통상마찰이 부정적인 효과만 초래했다는 견해에는 반대한다.

일본처럼 왜곡된 시스템에서는 외압이 긍정적 영향을 미쳤고 때로는 건전한 견제기능을 행사했다는 이른바 '외압 유용론' '미국 건전야당론' 의 측면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미국 통상압력의 기본전략은 시기별로 달라졌다.

80년대에는 '자유무역' 을 내걸었지만 90년대에는 통계자료를 근거로한 상호평등주의로 전환했다.

미 행정부는 자국민 여론조사를 들이밀며 양보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 책은 특히 95년 미.일자동차협상을 계기로 미국의 통상압력이 질적으로 변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미국이 원칙을 잃어버리면서 의회내에서 공화.민주당이 대일 압박전략을 놓고 분열됐으며 미 언론들도 정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행정부내에서도 국무.국방부는 무역대표부 (USTR) 의 강공일변도의 입장을 비판했다.

협상루트도 다원화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관료 대 관료의 협상을 주축으로 정치권이 막판 타결을 짓는 것이 기본골격이었다.

그러나 자동차협상에서는 막후에서 미.일 업계간 민간차원의 협상을 병행해 진행시킨 것이 주목할만한 변화다.

민간업계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경색국면에 빠진 정부차원의 협상에 큰 윤활유로 작용했다.

반면 양국 정치권은 자동차협상을 계기로 기능부전에 빠졌다고 본다.

과거에는 정치권의 정치적 결단이 협상의 핵심이었다면, 자동차협상에서는 관료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자민당 일당정권의 붕괴로 일본정치권이 분열되면서 통상관료들의 파워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결론적으로 일본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전후 시스템을 개혁해 글로벌화.네트워크화의 물결을 타야한다는 지적이다.

단순히 일본의 무역흑자때문에 통상마찰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한 협상 타결도 일시적인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도 미국의 통상압력을 감정적으로만 대응해서는 안된다는 시사다.

2백96쪽. 5천6백엔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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