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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기업 성장의 보약 … 리스크를 친구 삼아 경영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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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 함정 시대'다. 통제가능한 리스크에 비해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기업경영자가 관리하기 어려운 리스크가 점점 늘고 있다. '운(運)7 기(技)3'이란 말이 있지만 불확실성이 증대되면서 기업경영에서는 '운9 기1'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어떤 의사결정도 영원한 효자나 불효자가 될 수 없다. 오늘 보면 실패한듯한 결정이 지나고 나면 성공한 결정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1년6개월 이상의 미래추정은 무의미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리스크 관리가 기업의 흥망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1)조기경보(Early Warning) 전문가로 변신해야

선택을 해야 할 경영자는 리스크를 즐겨야 한다. 리스크 없는 성과는 없기 때문이다. 리스크를 통제 가능한 범위 내로 끌어들여 벗삼아야 한다. 칼날 위를 걷는것처럼 기업환경은 점점 벤처화돼 가고 있다. 법률개정, 환경변화, 기술유용성, 사회추세변화 등 리스크 요인은 날로 커진다. 앨빈 토플러는 “오늘의 지식이 내일은 쓰레기가 되는 혁명적 속도의 시대가 됐다”고 말한다.

경영자는 기업의 요리사이자 컨설턴트다. 리스크를 잘못 관리해도 문제지만 리스크를 회피하면 더 빨리 죽는다. 리스크 함정 시대의 성공경영을 위해서는 경영자 스스로 조기경보 전문가로 변신해야 한다.

고객의 선택에 의해 일순간에 시장을 빼앗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 대마불사는 옛 이야기다.과거의 성공요인이 실패요인으로 둔갑하기도 한다.1957년 미국 S&P 500 기업 중 40년 후에도 남은 곳은 74개사뿐이었다. 환경변화에 따라 신속하게 자기 몸을 바꾸는 '아메바 경영'이 필요해졌다. 리스크 관리는 손실을 최소화하는 소극적 개념이 아니다.이익창출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제록스의 창립자인 체스터 칼슨의 사업제휴를 거절한 GE, 1986년 헐값에 지분을 인수하라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제의를 발로 걷어찬 IBM은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대표적 사례다. 반대로 외환은행을 인수했던 론스타나 진로의 부실채권을 일찌감치 값싸게 사들여 수조원의 이익을 남긴 골드먼삭스, 그리고 국내에 없던 경매와 헤드헌팅 사업을 일으켜 성공한 뒤 매각한 KTB네트워크의 권성문 사장은 성공사례다.


(2)시장을 좀 더 가까이에서 살펴야

시장정보는 현장과 맞닿은 종업원·고객·공급자·경쟁사 등에서 나온다. 성공한 명문기업 중에서 리스크관리에 실패하는 불상사가 많다. 자만에 빠져 시장의 경고를 듣지 못하기 쉽다. 미국의 유명 컨설턴트 벤 길라드(Ben Gilad)는 “경영혁신을 할 때 외부 컨설팅회사를 활용하는데 신중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일본의 성공 다국적기업들이 컨설팅회사를 덜 활용하는데 주목하라고 강조한다. “컨설팅회사를 끼고 사는 경영자는 경영진의 전략적 위기관리능력을 감퇴시킨다"며 그런 경영자를 책임회피자라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컨설팅 회사가 이런 부정적 측면만 있을리는 없다. 컨설팅회사의 적절한 도움으로 되살아나거나 도약한 기업들의 사례도 많다. 하지만 컨설팅회사를 맹신하는 경영자들은 내부 직원에 이어 시장의 의견을 무시하기 쉽다는 것이 길라드의 생각이다. 친구따라 강남 가듯 외국의 경영전략을

무비판적으로 도입했다가 조직의 응집력만 와해시키고 실패한 사례가 국내에 많다고 본다. 풍부한 경험을 지닌 회사 내 현장전문가를 존중해야 한다. 이들이 축적한 시장지식과 분석력은 훈련받은 외부 전문가집단이 제한된 시간 안에 짜낸 결론을 능가할 수 있다.

경영자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땅히 알고 실천해야 할 것을 소신있게 제시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2001년 171억 달러의 부채를 짊어지고 스러져가던 제록스를 구해낸 앤 멀케이 회장이 좋은 사례다. 그는 취임 초 자금지원을 부탁하러 '투자의 귀재' 워런 버펫을 찾아갔다가 금과옥조로 삼을만한 훈수를 들었다. 외부의 목소리보다 고객과 직원을 우선시하라는 어찌 보면 평범한 충고였다. 그는 이를 경영 철학으로 삼고 매진해 제록스를 부활시켰다.

(3) 신뢰지수를 높이는데 과감해야

금융시장에서는 회계투명성이 떨어지고 선제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 기업은 지원하지 말라는 목소리가 크다. 어려운 기업들은 우선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보여 신뢰감을 줘야 한다. 떠밀려서 하는 구조조정은 성공확율이 낮다. 어렵다고 떼쓰는 시대는 지났다. 회생의지를 믿도록 해야할 책임은 기업에 있다. 지원해 준 금융회사에 장래 수익을 가져다주든지 손실을 최소화하게 해 줄 수 있는 카드를 제시하라.

많은 기업들이 윤리적인 문제로 고생을 한다. 윤리경영 실패로 거액의 손실에다 주가 폭락,도산까지 가는 고통을 겪곤 한다. 불량품이라든가 입찰담합처럼 예전엔 사회적으로 큰 문제시되지 않던 일들이 이제는 기업의 이미지를 크게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이해관계자의 범위도 크게 늘었다. 편법을 써서라도 성공할 수 있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있다. 미국·일본처럼 명문기업들도 예기치 않은 윤리적 불상사로 고생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윤리경영에 실패하면 회복하는데 어떤 리스크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명성을 구축하는데는 20년 걸리고 이를 깨먹는데는 5분 걸린다” 고 버핏은 경고한다. 문제가 생기면 CEO가 전면에 나서 즉각적이고 근본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비윤리적인 일은 내부고발에 의해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비밀은 없다고 여겨야 한다. 긍정적인 정보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정보도 신속 정확하게 공개해야 한다. 윤리경영은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필수선택이다. 특히 협력업체와의 상생경영이 중요하다. 대기업들은 주로 ‘주주경영’에 몰두하지만 기업가치는 주주뿐만 아니라 협력업체·고객·종업원 모두가 합심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주주나 고객을 감동시키는데는 열심인데 납품하는 중소기업를 돌보는 일은 여전히 미흡하다. ‘상생경영’이 겉치레로 끝나지 않으려면 최고경영자(CEO)가 현장경영을 통한 '암행어사'가 되어야 한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기업 CEO들은 스스로 납품업체 사장을 만나 어려움을 듣는다. 한국의 많은 대기업은 과장급도 협력업체에겐 멀고 먼 존재일 경우가 많다.특히 최근 들어 상거래 부패 해결은 상생경영의 핵심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영업이익과 현금흐름을 중시해야 한다. 마땅히 성장을 해야하지만 너무 공격적이거나 통제되지 않은 성장은 기업을 곤경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급성장하다가 부실화하는 경우는 문어발 확장을 하거나 경험이 부족한 2세 경영자의 과시경영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업력이 20년 넘은 초우량 기업 K사와 L사는 공장을 제외하면 보유 부동산이 없다. 서울 사무실도 전부 임대해 쓴다.

구조조정을 외부지원에서도 찾아야 하지만 외과처방에 선제적으로 올인해서 대비해야 한다.신용경색이 깊어지는 요즘 같은 상황에선 더욱이 유동성을 최우선 지표로 삼아야 한다. 어느 날 거래 은행에서 툭 날아들지 모르는 '이혼장'(만기 연장을 해주지 않겠다는 통보)에 대비해야 한다.

(4) 현장경영이 조기경보 경영의 지름길

현장 속에서 리스크에 대한 조기경보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성공한 조직이나 경영자는 PC 모니터보다 현장에서 해결방안을 찾는다. 현장에는 성공과 실패의 조기정보가 널려있다. “언론과 인터뷰할 시간 있으면 공장을 한 번 더 가봐라”는 일본 교세라 회장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경영자는 통제자가 아니라 해결사다. 주식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서도 투자수익률이 높은 이들은 현장에서 발품을 많이 판 경우다. 기업경영은 특히 정보가 이익의 원천이고 경쟁력의 근원이다. 금융회사 심사부서 직원들은 “CEO가 현장을 멀리하는 기업을 멀리하라”는 말들을 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고경영자가 경영잡지 표지에 자주 등장하거나 경영성공 사례를 책으로 출판하는 기업은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도했다. 2세 경영인으로 글로벌 경영만 되뇌고 현장을 모르는 대학 교수의 자문에 의존했다가 낙마한 K사 사례도 있다. 이른바 아마추어식 '임상 경영'이다.가업승계를 성공적으로 한 2세 경영자들은 현장에서 다년간 뛰면서 실무지식을 철저하게 배운 사람들이다. 경영자는 현장을 알아야 혁신을 할 수 있고 구성원의 신임을 얻을 수 있다. 오너경영 승계에 일부 비판이 있지만 오랜 현장경험이 뒷받침된 실력있는 2세라면 전문경영자보다 오히려 낫다고들 한다. 해외 MBA 출신으로 현장을 멀리하고 'PC 경영'이나 '안방경영'을 하다 쓴맛을 본 젊은 경영자들이 주변에 많다. 성공경영의 지름길은 현장경영 위주의 '시나리오(Contingency)경영'이다.

(5) 실패를 자산으로 여겨야

위기에 빠졌다 되살아난 '턴 어라운드' 기업의 사례는 살아있는 최고의 교과서다. ‘성공하려면 열번쯤 실패해야 한다’는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의 이야기를 되새겨야 한다. 위기에 빠져보지 못한 기업이 가장 위험하다는 말도 있다. 외환위기 직전 풍전등화 지경에서 신속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도약한 두산그룹과 아모레퍼시픽, 회계투명성 문제 등으로 휘청거리다 기업지배구조 모범사례로 꼽히게 된 SK그룹 등은 실패를 자산으로 만든 사례다. 도산위기 때의 노사화합 경험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하는 BMW와 도요타도 그렇다. 실패에 냉정한 징벌만 있는 조직은 창의성을 기대할 수 없다. 리스크를 즐기는 유전인자를 제거하는 건 이익을 창출할 싹을 밟아버리는 짓이다. ‘멋진 실패에 상을 주라’는 미국 경영학자 톰 피터스의 말을 기억하자. 기업이 실패사례를 숨기거나 버리는 건 큰 죄악이다. 에드 젠더 전 모토로라 CEO는 미국 경제잡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 실패에서 배우라’고 조언했다. 실패가 최고의 경영학 교과서라는 이야기다. 성공과 실패 경험이 많은 CEO는 다른 기업의 경영코치로도 자주 불려다닌다.

이정조 리스크컨설팅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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