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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원 의식까지 개혁 “폭풍우 속에서 길 뚫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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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 보약이 된 기업들

지난해 초부터 본격화한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대다수 기업들이 다양한 대응방안들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제도, 사회 공공 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 정부 지출 조기집행 등 많은 대안이 논의되지만, 우리의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줄 묘책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이 위기가 짧아도 1년 이상 꽤 길게 지속될 것 같다는 우려다.

이런 가운데 우리 경제에 막연히 퍼지는 인식 중의 하나는 '위기는 기회'라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이번 경제위기가 끝나고 나면 새로운 기회가 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위기는 누구에게나 기회가 될 리 없다. 뼈와 살을 깎는 인고의 노력과 준비가 필요하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대표적 사례는 세 차례의 엔고 위기를 극복한 일본 도요타자동차를 들 수 있다. 이 회사가 겪은 엔고 위기는 장기간 지속됐다는 점에서 작금의 금융위기와 유사하다. 일본은 1985∼87년, 93∼95년, 99년∼2000년 등 총 8년 동안 지속된 세 차례의 엔고 시기를 경험했다. 1차 엔고 시기에는 불과 2년 만에 달러에 대한 엔화 가치가 254엔에서 127엔으로 두 배로 뛰면서 일본 자동차업계의 수출이 격감했다. 이런 전대미문의 환경변화에 대응해 도요타는 1986년부터 모든 부문에서 원가를 50% 줄이는 ‘첼린지 50 운동’을 전개하고, 내수 판매를 늘리려고 ‘T-50 작전’을 전개했다. 이 양대 전략은 단순한 업무 효율을 높이는 차원에 그친 것이 아니라 도요타 구성원 전체의 의식을 개혁하는 계기가 됐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아이치현 다하라 공장 근로자들이 생산 공정의 렉서스 자동차를 점검하고 있다. [중앙포토]


또 공장 생산혁신뿐만 아니라 사무 혁신을 일으키는 뜻깊은 전환점이 되었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국 대성공을 만들어 냈다. “마른 수건도 다시 짜 쓴다'는 유명한 말도 바로 이때 생겼다.

2,3차 엔고 위기 때에는 달러 당 환율이 각각 130엔→93엔, 130엔→106엔으로 떨어져 1차 엔고 위기때보다 하락폭은 작았다. 그러나 일본 경제 전체가 거품 경제 붕괴로 인해 극심한 경기침체를 경험하던 터여서 일본 기업들의 대응력은 크게 위축돼 있었다. 도요타도 예외가 아니었다. 가령 1993년 매출액은 전년 대비 9.7%, 순이익은 28.8%나 줄었다. 도요타는 2차 엔고의 파고를 넘으려고 다양한 보유 자동차 모델들을 플랫폼 위주로 새롭게 통합해 개발비용을 근본적으로 절감했다. 그리고 전사적으로 생산라인과 사무 간접 부문에 대한 개선활동을 전개하고 생산성을 구조적으로 향상시켜, 불과 3년 만에 순이익을 2.7배로 늘렸다. 뿐만 아니라 3차 엔고 시기에는 글로벌 생산체계를 구축해 모델 당 생산 대수를 늘림으로써 단위 부품 별 조달비용을 현격하게 낮췄다. 이런 노력들로 인해 일본 경제가 1990년대에 연평균 실질성장률 1%대에 머물러 있을 때 도요타는 순이익을 3배 이상으로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위기를 약이 된 사례는 오늘날 디지털 디스플레이 시장의 주역인 초박막 액정디스플레이(TFT-LCD) 산업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산업의 본격적인 성장 계기는 1990년대 중반 노트북 수요가 급증한 것이었다. 당시 노트북을 중심의 TFT-LCD 수요가 1994년 57%, 1995년 30%씩 늘면서 TFT-LCD 제조업계는 상당한 흑자를 누렸다. 당연히 업체 간의 경쟁과 신규 진입을 격화시켰다. 처음 진출한 업체들이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하면서 TFT-LCD 생산 규모는 40% 이상 급증했다. 이런 과당경쟁으로 1995년부터 TFT-LCD 공급 초과 상황이 빚어진 상황에서 불황기를 맞이하였다. 수익성이 악화된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생산 시설을 자동화하고 생산·연구직의 남는 인력을 줄여나갔다.

이렇게 TFT-LCD산업 전체가 위기인 1995~96년, 삼성전자·LG전자·현대전자와 같은 한국 기업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업종의 대다수 기업들이 불황기에 수익성 유지에 애쓴 반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오히려 생산규모를 확장했다. TFT-LCD 가격 하락으로 경쟁사들이 생산이나 신규투자를 줄이는 시점에 오히려 생산라인을 증설하는 역발상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향후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해 TFT-LCD 가격이 다시 반등하는 시점에 가급적 빨리 제품을 내놓아 이익을 선점하겠다는 판단이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TFT-LCD 데스크탑 모니터 시장이 출현하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 성장 시장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이런 시장변화를 한차례 겪으면서 후발주자였던 한국 기업들은 TFT-LCD 생산기술을 급속히 축적해 나갔다. 이를 바탕으로 데스크탑 모니터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킨 또 다른 사례로 중미 코스타리카의 아틀라스 일렉트리카(Atlas Electrica)라는 중견 전자회사를 꼽을 수 있다. 1961년 이 나라 카르타고 지방에 설립된 이 회사는 1999년에 약 43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중미 지역 최대 백색가전 생산업체다. 아틀라스 일렉트리카가 클 수 있었던 건 1990년대 중반에 찾아온 위기를 혁신적 사고로 극복한 덕분이다. 90년대 중반 중남미의 백색가전 시장이 커지자, 쟁쟁한 글로벌 가전 대기업이 속속 시장에 뛰어들었다. 월풀·GE·보스-지멘스·메이태그·삼성전자·LG전자 등이다. 그러자 대다수의 산업 전문가들은 아틀라스 일렉트리카가 이러한 다국적 기업들을 이겨내기 힘들 것으로 봤다. 가전산업은 무엇보다 대규모 생산시설을 등에 업은 규모의 경제, 그리고 관련 산업 인프라의 발달 정도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틀라스 일렉트리카는 이런 예상과 정반대의 결과를 일궈냈다. 토종업체가 할 수 있는 온갖 전략을 구사해 종전 시장을 지켜나갔다. 우선 냉장고와 스토브처럼 수송비가 많은 두 가지 제품에 주력했다. 또 중남미 어느 곳이라도 단 한 개의 제품 주문만 들어오면 24시간 내에 배달하는 물류망을 구축했다. 애프터서비스도 48시간 안에 가능토록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해외 선진 업체들과 전략적 제휴를 해 해외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코스타리카 안에서는 경쟁업체들을 인수해 내수시장 지배력을 더욱 높였다.

이상의 세 가지 사례를 통해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세가지 비법을 뽑아낼 수 있다.

첫째, 위기 상황 속에서도 다양한 노력을 통하여 본원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도요타가 엔고를 극복한 가장 큰 비결은 위기를 뛰어 넘을만한 높은 생산성을 확보한 것이다. 삼성전자·LG전자도 후발주자로서 기존 경쟁사를 능가하는 생산성 우위를 점하게 됐다. 아틀라스 일렉트리카 역시 제품 수송비, 물류, 애프터 서비스에서 만큼은 그 어떤 다국적 거인에게도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췄기에 생존 발전이 가능했다. 이러한 본원적 경쟁력 없이는 위기에서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둘째, 쉽사리 모방하기 힘든 창의적 발상을 활용했다. 따라하기 쉬운 사고와 전략으로는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기 힘들다. 도요타의 창의적 생산성 혁신 운동은 세계적으로도 정평이 나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소니와 필립스 같은 최종 수요 기업들과 손잡고 경쟁사의 추격을 떨쳐내는 전략 역시 쉽게 모방하기 힘들다. 아틀라스 일렉트리카가 제품력 이외에 물류 등 부가서비스에 착안한 것 역시 신선한 발상이다.

마지막으로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과감한 추진력을 갖췄다는 점이다. 위기는 불확실성을 높이고, 불확실성은 기업의 실패 리스크를 높이게 마련이다. 불확실성과 위험에 직면해 포기하고 굴복하는 기업에겐 기회가 있을 수 없다. 세계가 경쟁하는 글로벌 시장에서는 미래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을 갖는 기업가 정신이 없이는 진정한 기회를 만들기 힘들다.

서울대 경영대 박남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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