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故장자연 문건 공방 둘러싼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지난 7일 비관 자살한 故장자연(29)이 결국 편히 눈을 못 감게 됐다.

장자연이 지난달 28일 소속사 전 매니저 유장호에게 전달했다는 문건 일부가 공개되며 파문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문건을 읽지도 않고 소각했는데 경찰 수사라니. 고인이 편히 가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13일 KBS 뉴스9가 단독 공개한 이 문건에는 장자연이 소속사로부터 성상납과 술시중을 강요받았고, 대표 김모씨에게 욕설과 구타를 당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충격을 줬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얘기가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장자연은 소속사 대표 김씨로부터 태국으로 골프를 치러 간 모 드라마 PD에게 술과 골프 접대를 강요받았으며, 1년간 매니저 급여를 자신이 부담하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장자연은 또 룸살롱까지 불려나가 술자리와 잠자리 접대를 강요받았고 현재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언급했다.

만약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장자연은 수치심과 연예 활동에 대한 회의를 느꼈을 것이고, 그것이 심각한 우울증으로 연결됐을 것으로 보인다. 연예기획사가 직·간접적으로 그녀의 죽음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장자연 사건의 관할서 분당경찰서도 바빠졌다. 경찰은 13일 오후 유장호를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했고, 장자연의 유족과 소속사 관계자도 추가 조사한다는 계획이다. 이제 사건의 진실은 경찰 조사에서 밝혀질 예정이지만 몇가지 의문점은 남는다.

▶의문1 문건의 정체는?
매니저 유장호는 장자연이 자살한 7일 "자연씨가 죽기 2주일 전부터 찾아와 울었고, 2월 28일 자기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며 A4용지 6장의 문건을 줬다"고 폭로했다.

이 문건 마지막에는 "저는 힘없고 나약한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라는 간절한 내용의 글귀와 장자연의 친필로 된 작성 날자와 사인, 지장이 찍혀 있었다.

장자연이 유서를 남기지 않았고, 그녀가 남긴 최근 글이라는 점에서 이 문건의 성격과 용도가 무엇이었는지 먼저 밝혀져야 한다. 유장호는 7일 이 문건을 처음 공개하며 "자연씨가 죽은 이유는 단순히 우울증이 아니다. 연예계가 다 아는 '공공의 적'이 배후에 있다"며 소속사와의 갈등설을 제기했다.

이 문건에서 눈길을 끄는 건 각 장마다 찍혀있는 간인이다. 이는 보통 고소나 내용증명을 보낼 때 사용하는 본인 증명 방법. 장자연이 치밀하게 간인까지 찍은 문건을 유장호에게 건넸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장자연이 유장호를 만나 고민을 털어놓고 해결책을 모색하던 중 소속사를 고소하는 것으로 합의, 두 사람이 함께 자술서를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자연씨가 공공의 적과 싸울 상대로 나를 선택한 것 같다"는 유장호의 말이 이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유장호는 장자연이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자살할 것 같은 낌새를 알았을 텐데 왜 당장 그녀의 가족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은 걸까? 왜 그녀가 죽은 뒤 유족에게 문건을 보여준 걸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걸까.

▶의문2 문건 제보자는 누군가?
장자연의 유족은 처음부터 문건에 대해 "자연이가 쓴 것인지 확실치 않고, 설사 그렇다 해도 믿을 수 없는 얘기들"이라며 무시했다.

유족은 유장호가 언론에 문건을 전달하며 파문이 커지자 "우리 자연이를 두번 죽이지 말아달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장자연의 언니는 경찰에 "유족 동의 없이 수사하지 말 것"을 요청했고, 오빠도 언론사에 이메일을 보내 "고인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결국 유장호는 유족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문건 원본과 사본 일체를 전달했고, 소각했다. 더 이상 문건에 대해 발설하지 않겠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노컷뉴스와 조선일보에 이어 13일 KBS 뉴스9에 이 문건 내용이 상세히 보도됐다. 누군가 어떤 의도를 갖고 KBS에 제보한 것이다. 이날은 유장호가 경찰 조사를 받는 날이었다. 문건은 불에 그을린 모습이었지만 성상납과 룸살롱 술시중을 강요받았다는 내용 등은 확인할 수 있었다.

한때 이 문건을 유일하게 갖고 있던 유장호가 아니라면, 누가 어떤 의도로 언론사에 이 문건을 제보한 걸까. 유족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더컨텐츠와 악연이나 원한이 있는 자의 행동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이 문건의 이동경로에도 주목하고 있다.

▶의문3 왜 유장호를 선택했나?
유장호는 작년 장자연의 소속사인 더컨텐츠에서 일하다가 사직한 뒤 이 회사 소속 연기자(송선미·이미숙)를 영입해 올해 초 호야스포테인먼트라는 기획사를 차렸다.

그러나 더컨텐츠 측은 "송선미가 전속 계약을 위반했다"며 유장호와 민·형사 소송을 벌이고 있고, "이미숙도 우리 회사와 계약이 2009년 12월까지로 돼 있다"며 소송을 준비중이다.

더컨텐츠에 따르면 유장호와 장자연은 한 달간 일을 같이 했을 뿐 그다지 친분은 없었다고 한다. 한 직원은 "장자연이 백상 시상식(2월 27일)을 앞두고 드레스 문제로 소속사와 통화했는데 그때 자연이가 유장호의 전화번호를 물어봤다"고 말했다.

장자연이 유장호의 전화번호를 모르고 있었을 만큼 친분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자연이가 소속사에 남겠다고 했고, 사장님을 존경한다는 말도 했는데 이게 웬 날벼락 같은 얘기냐"며 반문했다.

현재 일본에 머물고 있는 더컨텐츠 김 대표는 "작금의 상황은 유씨가 법정 공방중인 나를 코너로 몰기 위해 벌인 자작극"이라며 "성상납, 술자리를 강요한 적이 없는 만큼 경찰 수사에도 적극 협조하겠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응분의 댓가는 모두 유씨가 치러야 할 것"이라며 각을 세웠다.

김범석 기자 [kb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