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걸즈’는 재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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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호 07면

시계를 30여 년 전으로 돌려 보자. 1970~80년대 한국인은 팝음악을 주로 들었다. 달콤한 아바와 디스코풍의 비지스에 취했고, 마이클 잭슨의 스텝을 따라 했으며 마돈나에 아찔해했다. 레드제플린·딥퍼플·핑크 플로이드도 빼놓을 수 없다. 그땐 그랬다.
균열은 가왕 조용필부터였다. 이어 들국화·이문세·변진섭 등의 등장으로 조금씩 기울던 축은 마침내 92년 서태지의 등장과 함께 완전히 역전됐다. 이후 주도권은 철저히 한국 가요였다.

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

영화 역시 비슷했다. 70~80년대 ‘조스’ ‘스타워즈’ ‘인디아나 존스’ 등 할리우드에 푹 빠졌던 우리들은 90년대 들며 ‘결혼이야기’ ‘접속’ 등을 통해 조금씩 한국 영화에 맛을 들여갔다. 그리고 99년 ‘쉬리’는 결정타였다. 이후는 한국 영화가 대세였다. 비록 어렵다지만 지금도 우리들은 한국 영화를 더 많이 본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대가 변함에 따라 한국 대중이 어떤 선택을 했느냐다. 처음엔 창작력에서 한 수 위인 미국 대중문화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만족하진 못했다. 한국 사람이 나오고, 한국 말로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우리 것’을 원했다. 그건 애국주의와는 다른 차원이다. 조금 부족해도 ‘공감’을 원했던 것이다. 시장의 확대, 경제력의 상승 등도 한몫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인기 장르인 뮤지컬은 어떨까. 2000년대 들어 국내 뮤지컬 산업은 해마다 20%씩 성장하는 등 시장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흥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정서와 뮤지컬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도 장점이다. 그런데 대박을 친 창작 뮤지컬은 좀체 등장하지 않고 있다. 가요의 서태지나 영화의 ‘쉬리’와 같은 킬러 콘텐트(killer contents) 말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뮤지컬이란 장르 안에 숨겨져 있다. 영화와 대중음악은 이분법이다. 팝음악이냐 한국 가요냐, 혹은 할리우드냐 한국 영화냐 하는 식으로 양분된다. 반면 뮤지컬은 다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한국 창작 뮤지컬 사이에 점이지대가 있다. 바로 라이선스 뮤지컬이다. 라이선스 뮤지컬은 외국 사람이 만들었지만 실제 무대엔 한국 배우가 선다. 그리고 한국말로 한다.

관객은 머리로는 외국 뮤지컬인지 알지만 정서적으론 한국 것처럼 받아들인다. 자연스레 ‘한국적인 뮤지컬을 보았으면…’ 하는 간절함은 약해지게 마련이다. 게다가 라이선스 뮤지컬은 관객의 눈을 저 높이 올려놓았다. 한국 배우들이 등장하는 ‘캣츠’ ‘맘마미아’ 등을 본 관객이라면 웬만한 창작 뮤지컬엔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만으로도 창작 뮤지컬은 힘이 벅차다. 최근 개막한 뮤지컬 ‘드림걸즈’는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이 작품은 한·미 합작이라고 하나 사실은 미국 사람들이 100% 만들고, 한국 배우가 무대에 섰을 뿐이다. 작곡·연출·무대·조명 등 2009년 현재 미국 브로드웨이의 엄청난 창작 역량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런 뮤지컬 수준에 눈높이를 맞추게 된 한국 관객이 이제 막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창작 뮤지컬의 ‘유치함’을 수용할 수 있을까. ‘드림걸즈’의 성공 시나리오가 오히려 부메랑이 돼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염려는 단지 기우일까.


중앙일보 문화부 공연 담당 기자. 타고난 까칠한 성격만큼 기자를 천직으로 알고 있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더 뮤지컬 어워즈’를 총괄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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