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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살기힘든 사람에게 필요한 게 예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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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이룸, 200쪽, 9900원

사형제도의 정당성, 사춘기의 방황, 자살에까지 이르는 삶의 고뇌 등. 묵직한 사회적 이슈, 인간 실존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지만 분량이 원고지 470쪽쯤으로 착한데다(?) 일본 작가 특유의 감각적 글쓰기가 살아 있어 빠르게 읽히는 소설이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이빨의 안전을 걱정하며 뜯어먹어야 하는 뼈 있는 음식이 아닌, 씹지 않아도 술술 넘어가는 유동식 쪽이다.

소설 출간에 맞춰 한국을 찾은 저자 나카무라 후미노리(32·사진)를 11일 만났다. 그는 2005년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주목 받는 작가다. 동석한 일본 출판사 관계자는 “자신의 반경 5m 이내 일상적인 사건을 다루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나카무라는 큰 테마에 집중해 왔다”고 응원했다. 그는 구부정한 체형에 어둠 속에서 막 뛰쳐 나온 것처럼 인사동의 한 식당 안을 눈부셔했다. 소설 속 그가 그린 우울한 인간 같은 인상이다. 그는 “예술은 인생이 만족스러운 사람보다 하루하루 살기 힘든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희망은 없다’는 한탄 같은 제목에 그런 말까지 듣고 나니 소설은 어쩐지 지독한 불행에 공감할 때처럼 감상적으로 읽게 된다. 하지만 쥐어짜는 소설일 수도 있었을 텐데 등장 인물들의 내면 묘사가 충분치 않아선지 그들의 불행과 우울을 즐기게 된다.

결과도 해피엔딩이어서 소설을 가볍게 한다. 소설의 중심인물 야마이는 법에서 정한 만 열여덟 살에서 반년 지난 시점에 젊은 부부를 살해했기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는다. 반년 전이었더라면 법 규정상 사형 선고가 내려질 수 없었다. 그는 부부의 유족들이 원한다며, 항소를 포기해 사형 집행을 자초하려 한다. 하지만 고아 출신 교도관 ‘나’에게 속을 털어놓은 후 결국 항소한다.

저자는 교도소 주임의 입을 통해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자살한 친구 마시타가 내게 남긴 노트를 통해 인간 본성의 선악 여부를 따진다. 사회소설적인 면모다. 사형제도의 어정쩡함을 확인하고 싶다면 2부 1장을 읽어 보시라.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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