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규 장편소설 '시인들이…' 한국 문화계 치부 파헤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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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생각 없이, 생각의 나눔 없이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면 말과 글은 우리 삶 그 자체이다.

우리의 말과 글로써 민족의 정체성을 이어오게한 한글은 무엇인가.

세계화.자본제일주의 시대 한글의 순수성을 지켜나가는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한글날을 맞아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장편소설이 나온다.

박덕규씨 (朴德奎.39) 는 첫 장편소설 '시인들이 살았던 집' 을 한글날인 9일 현대문학사에서 펴낸다.

80년 '시운동' 동인을 결성, 시작 활동을 펼쳐온 박씨는 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 평론활동도 같이 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연작장편소설집 '날아라 거북이' (민음사) 를 펴내며 전방위 문학활동의 중심축을 소설 쪽으로 옮기며 시인이나 평론가 보다 이제 소설가로 불리길 원하는 '신진 작가' 이다.

"민족의 혼을 흔드는 시대. 영토.정치 나아가 경제적 전쟁을 넘어 문화.정보.도덕에 관한 경쟁시대로 돌입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 혼과 문화를 살펴보고 싶었다.

아직 우리 현재의 삶으로 살아 있는 우리의 문화 유산 한글을 소재로 하여. " '시인들이 살았던 집' 은 한글전용론자들의 국한문혼용론자들에 대한 테러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 기자.시인.출판인.정치인.기업인등을 등장시켜 우리 문화가 사회적 권력과 상업성에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도 살피고 있다.

해체 위기에 몰린 한 한글전용운동단체가 사회에 충격을 주며 살아남기 위해 한자 상용과 한문교육 부활을 주장하는 학자들을 연쇄 공개 테러한다.

그리고 5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상금을 내걸고 한글문학상을 제정한다.

이 상의 첫 수상자인 박한솔에게는 최근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자신들의 테러 행위가 민족적.역사적 심판임을 수상 소감을 통해 밝히고 또 그 내막을 파헤치는 기자를 테러할 것을 요구한다.

일단 수상을 승낙한 박한솔은 막상 시상식이 다가오자 갈등을 일으키며 우리 문화 왜곡상의 일단을 드러내고 있는게 이 작품이다.

즉 '시인들이 살았던 집' 은 한글이 상징하는 민족의 정체성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문화에 있어서 우리의 고유성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권력과 돈에 왜곡될 수 없는 문화의 순수성은 무엇인가라는 현장비평가적 시각을 문화현장에서 소설로 묻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그러면서 소설 대단원 부분에서 박한솔의 수상거부 연설을 통해 작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직도 문학을 어떤 이데올로기의 선전장으로 이용하는 풍토가 남아 있는가 하면, 순수니 본격이니 문학상 수상작품집이니 하는 것을 오히려 선전 도구로 삼아서 정작 그것으로 대중의 관심을 유발시키려 애쓰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지요. 문학이 돈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되고 또 어떤 명분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라고. 이념화 된 국수주의.순수주의가 아니라 문화 자체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신념만이 세계화.상업화.정보화 시대에 문화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고 나아가 인간의 정체성을 변치 않게 하리라는 것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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