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 불법유통현장]上. 하청업체에 물품대금으로 지급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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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상품권 불법 유통의 부작용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물건 제 돈 주고 사면 바보' 란 말이 나올 정도다.

상품권을 동네 구멍가게에서 20~30% 싸게 살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해진 상품권 불법유통의 현황과 문제점, 개선방안등을 2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급전 (急錢) 이 필요해진 회사원 김모씨. 은행신용카드 현금서비스도 한도가 차 할 수없이 서울 종로의 한 사채업자를 찾았다. 사채업자 요구에 따라 그는 백화점에 가서 신용카드로 1백만원어치의 상품권 (선불카드) 을 샀고, 사채업자는 이 상품권을 80만원에 현금으로 바꿔줬다.

모 출판사는 올 추석 직전 유수의 제화업체 광고대행사로부터 광고비 대신 1천만원어치의 구두 상품권을 받았다.

이 출판사는 일부를 30% 싸게 직원들에게 팔고 나머지는 사채시장에서 할인해 현금화해야 했다.

이처럼 상품권 불법 유통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상품권은 발행자가 할인판매할 수도, 다른 사람에게 위탁해서 팔 수도 없게 돼있다(상품권법) .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다. 전에는 그래도 쉬쉬하며 유통되더니 이제는 아예 하청업체 납품대금·용역비등으로 공공연히 불법.변칙 유통되고 있다.

상품권을 취급하는 곳도 엄청나게 늘었다. 명동과 종로에는 '백화점.구두 상품권 판매' 란 간판을 내걸고 영업하는 간이 구두수선소나 담배가게등이 수없이 많다.

통신판매업자가 공식적으로 팔기도 한다. 한 제화업체 상품권 관계자는 "중심부의 일부 구두수선소는 상품권을 많이 취급하면서 권리금이 껑충 뛰었다" 고 말했다.

권리금이 수억원에 이르는 곳도 있다는 것. 이들의 유통 경로는 크게 1) 발행업체 (할인)→하청.협력업체 물품.용역대금→ 사채업자에 할인 (속칭 와리깡)→ 구두수선소 등으로 가거나 2) 급전 소요자 신용카드로 구입→ 사채업자→ 판매처 등이 있다.

자금 사정이 어려운 백화점이나 제화업체 입장에서는 상품권 할인판매를 통해 돈을 구할 수 있다.

반면 단속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올 6월말 현재 상품권 발행업체는 2백13개사로, 상반기중 총 7천2백34억원어치를 발행했다. 이는 전년 동기 발행량에 비해 약 17.2%가 늘어난 것이다.

업종별로는 백화점.제화.유류업등 3개 업종이 전체의 약 84.2%를 차지하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이중 어느정도가 불법 유통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이러다보니 상품의 가격 구조가 왜곡되는가 하면 사채업자에게 상품권으로 급전을 마련한 사람이 대금을 갚지 못해 금융불량거래자가 되는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상품권이 신용사회 정착에 심각한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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