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수로 공사장의 북한억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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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하러 신포 (新浦)에 가 있는 우리 근로자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북한당국이 우리 근로자들의 신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작업장 이동을 통제해 경수로 부지 정지작업이 중단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사실상 행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위협적인 연금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이같은 조치는 우리 근로자들이 묵던 숙소 휴지통에서 김정일 (金正日) 의 사진이 실린 노동신문이 찢긴채 발견됐다는 이유다.

북한측은 이를 두고 자기네 지도부를 모독한 중대한 행위이므로 관련자를 밝혀내고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읽고 난 신문을 아무렇게나 처분하는 것이 우리쪽의 관행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고 북한의 요구가 건설인력의 자유로운 행동을 보장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KEDO) 와의 협정에 위반된다는 사실을 들어 항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측 입장에서는 한창 우상화되고 있는 '존귀한' 김정일을 남한쪽 근로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대단한 일로 받아들여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생각이나 논리는 자기네 체제유지의 방편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제3자에게는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국제적으로 북한의 이러한 논리가 전혀 통용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북한이 KEDO와 영사보호의정서를 통해 건설인력에게 외교관에 준하는 면책특권과 신변안전을 보장하고서도 이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국제적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더욱이 관련자 색출이니 사과니 하는 북한의 요구는 누가봐도 억지일 뿐이다.

남한측 근로자들의 신변안전이 확보되지 않고 경수로의 순조로운 공급보장은 어림없는 일이다.

경수로사업은 남북한의 경제협력및 인력교류를 통한 신뢰회복과 민족동질성 회복에 큰 뜻이 있다.

그런 뜻에서 근로자들의 신변안전이 보장돼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은 당장 위협적인 행동을 중지해야 한다.

다만 우리로서도 이번 일을 교훈삼아 근로자들의 신변안전에 위협이 되는 행동은 삼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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