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에세이]3.기분따로 생각따로 행동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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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이겼다.

자랑스럽게도 우리 축구선수단이 적지인 일본 현지에서 2대1이라는 점수로 이겼다.

그것도 1대 0으로 지고 있던 막판에 불과 몇분을 남겨놓고 대역전극을 펼치면서 이겨 버렸으니 이 아니 통쾌한 일이 아닐손가?

나 역시도 기분이 좋기는 매 한가지였다.

아마도 지난주 내내 만나는 사람들마다 주요 화제가 이 축구경기였으리라. 어떤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서 밤새 한잔 마셨다고 했고, 어떤 이는 다음 날에 월요병이 말끔히 가셔 지난주의 시작은 피곤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또 그 시간 길거리에는 차가 다니지도 않았다.

내가 알던 어떤 단체는 공교롭게도 그 날로 자선바자회를 택했다가 망해버렸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어찌되었든 모두는 기분이 정말 애들의 표현대로 '캡' 이었던 날임에 틀림이 없다.

아이들과 매일을 살고 있는 이곳 수련원에도 화제의 1순위는 지난주 내내 단연 이번 축구경기였다.

그런데 개운치 않은 생각 하나가 계속 나를 따라 다녔다.

그래서 이곳에 오는 아이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기분도 좋았고 우리 팀이 자랑스러웠는가' 라고. 한결같은 대답은 '그럼요' 였다.

그래서 또 물어보았다.

'일본에 이긴 것이 그렇게 좋으냐' 라고. '일본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밉고 싫은가' 라고. 그런데 아이들의 대답은 그때부터 헷갈리기 시작하였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밉고 싫다는 애들도 있었고, 그 나라가 그렇게 미운 것은 아니라고도 하였다.

그래도 일본이 싫다는 아이들이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또 물어보았다.

'일본은 싫어하면서 일본 만화나 학용품, 노래와 컴퓨터 게임들은 왜 그렇게 좋아하느냐' 고. 그리고 '정신대 할머니 문제는 알고 있으면서도 왜 그것은 데모의 대상이 되지 않는가' 라고. 그때부터 아이들은 무슨 뜻인지 잘 못 알아들을 '그냥요' 라는 말만 되풀이하다가 점점 묵묵부답이 되어갔다.

꼭 이 말 한마디 뿐은 아니겠지만 애들 사이에는 참으로 묘한 말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그냥요' 라는 말이 특히 묘하다.

이런 경우든 저런 경우든 그저 '그냥요' 를 붙여 놓으면 괜찮게 넘어간다.

어쨌건 아이들과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이래서 아이들을 두고 '생각 따로 기분 따로 행동 따로' 라고 하는가보다 하고 새삼 생각해보았다.

애들뿐만이 아니라 어쩌면 사람이란게 원래 그렇게 모순덩어리라고 하지 않던가?

참으로 우리 아이들처럼 숱한 모순과 배반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신앙생활의 여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순과 배반, 갈등과 번민, 왼쪽과 오른쪽, '예' 와 '아니오' 사이에서 신앙인은 늘 어느 한편에 서기를 기도한다.

사는 날이 많아질수록 내 힘으로는 어쩔수 없는 경우가 많아지게 마련이고, 마음은 간절하나 몸과 상황이 따라주지 않는 아픔도 많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기도를 한다.

가을은 예로부터 기도하는 계절이라 했다.

가을이면 곧잘 인용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목장에 바람을 보내주시고, 이틀만 더 남국적인 날을 베풀어 주시라" 는 시구가 새삼스러워진다.

김건중 <신부,강원도 청소년수련원장.<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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