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메랄드 궁전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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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오케이!"

비로소 원하는 접속이 이루어졌다는 목소리로 오기욱이 흔쾌히 대답했다.

곧이어 철문이 열리고 푸르스름한 불빛이 밀려나왔다.

오기욱이 내손을 잡아끌며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가슴 부분이 깊게 팬 검정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 부분에는 고양이를 상징하는 듯한 가면이 씌워져 있어서 얼굴을 식별할 수 없었다.

"두분인가요?"

"둘. "

감정이 배제된 듯한 여자의 물음에 오기욱이 짧게 대답했다.

그러자 따라 오세요, 하고 말하고 나서 여자는 검푸른 조명이 밝혀진 좁은 통로를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곧게 이어진 좁은 통로 양옆으로는 즐비하게 방들이 이어지고 있었고, 검게 도장된 방문 위에는 '판도라' , '다프네' , '아르테미스' , '에오스' ,…등등의 이름이 나붙어 있었다.

희랍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과 요정의 이름을 아마도 호실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렇든 그곳은 지나치게 낮은 조명과 괴기한 정적으로 인해 악마적인 분위기가 절로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들어가세요. "

여자가 오기욱과 나를 안내한 곳은 '헤라' 라는 이름이 나붙은 방이었다.

헤라, 질투심 많은 제우스의 아내가 도대체 이 방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정말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무지 웃을 만한 분위기가 아니라서 나는 입구에 선 여자를 힐끗 훔쳐보고는 오기욱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여자가 밖에서 문을 닫았다.

헤라의 방. 그리 넓지 않은 원룸형의 실내 중앙에는 편안한 소파와 탁자가 놓여 있었고, 천장에는 바둑판 무늬처럼 만들어진 여러가지 색상의 조명판이 부착돼 있었다.

내가 길을 잃은 아이같은 표정으로 멍청하게 서 있을 때, 오기욱은 어느새 소파에 앉아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은빛 리모컨을 손에 들었다.

"이거 하나로 비디오, 오디오… 그리고 천장에 부착된 조명판의 색상까지 선택할 수 있어요. 비디오는 프로노부터 스포츠, 레이싱, 영화까지 있고, 오디오로 말하자면 장르별 음악이 다 있으니까 뭐든 원하는 대로 말해봐요. "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그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가 리모컨으로 지시하는 방향, 그러니까 출입문 맞은편 벽쪽에 벽걸이형 액정 모니터와 스피커가 부착돼 있었다.

잠시 멍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나는 가까스로 이렇게 입을 열었다.

"다 필요 없으니까 조명이나 녹색으로 바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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