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사태 장기화…화의신청으로 어음할인 안돼 협력사 골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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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제는 기아사태에 이어 '협력사사태' 가 불거지게 됐다.

기아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책도 붕 뜬 상태다.

금융계에서는 별도의 대책없이 기아사태를 질질 끌면 한달내에 협력사들의 연쇄부도가 표면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협력업체들은 기아가 화의신청을 내기 전까지는 어음의 30%정도를 은행에서 할인받아왔다.

그러나 지난 22일 기아가 화의를 신청한후에는 어음할인이 완전 중단돼 자금줄이 끊기고 말았다.

결국 만기때까지 보관했다가 기아로부터 직접 결제받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은행의 추가지원 없이 기아가 과연 자체자금으로 결제할 수 있느냐는 것. 이때문에 당장 운영자금이 없어 하루하루 부도위기를 넘기는데 급급한 상태다.

경기도 안산공단의 P사는 사주의 개인신용과 신용보증기금의 특례보증으로 은행에서 기아어음을 조금씩 할인받아 왔다.

그래도 8월 상여금은 물론 9월 월급도 못주고 있는 상태다.

기아가 화의를 신청한후로는 할인이 완전 중단돼 대책이 막막한 형편이다.

실제 부도도 늘고 있다.

아시아자동차 협력사인 광주의 L사는 29일 외환은행 광산지점에 돌아온 어음 1억3천7백만원을 막지 못했다.

이에 앞서 고려전기.대성등이 최종 부도처리돼 납품이 중단됐다.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금융권이 기아의 화의신청 이후 어음할인을 전면 중단해 협력사들의 자금사정이 최악의 상태에 달하고 있다" 고 말했다.

그렇다고 은행들이 특별히 지원대책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기아가 발행한 어음을 갖고 할인창구를 찾아오면 아예 상대도 안해준다.

화의신청에 따른 재산보전처분을 받은 기업의 어음은 부도기업의 어음이나 마찬가지로 취급한다.

제일은행측은 "지금으로서는 기아가 자체자금으로 결제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채권단 입장" 이라며 "29일 채권단회의에서 협력사 지원대책은 거론되지 않았다" 고 밝혔다.

정부의 지침에 따라 신용보증기금의 특례보증지원도 29일로 끝났다.

부도유예협약을 적용받는 동안에는 2백53개 업체가 4백17억원의 보증을 받아갔다.

앞으로는 협력업체들이 보증을 받으려면 다른 기업과 똑같은 심사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수록 감점 (減點)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거래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물론 거래지점과 각별한 신뢰관계가 있으면 어음할인을 일반대출로 전환받을 길은 있다.

어음 액면가 범위내에서 협력사의 자체 신용만 믿고 대출을 일으켜주는 경우다.

그러나 구체적 통계는 잡히지 않지만 요즘 창구분위기상 매우 드물다고 한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특례보증지원이 계속된다 해도 부실이 예상되는 협력사들에 무조건 돈을 퍼줄 수는 없다" 며 "기아사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한 협력사 지원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다" 고 말했다.

광주 = 천창환.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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