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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이유 설치한 핀홀카메라 부작용 많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점심시간의 분주함이 막바지로 접어들 무렵의 명동. 아리따운 20대 여인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나를 향해 씩 웃는다.

그러더니 갑자기 입을 벌려 이를 온통 드러낸다.

군데군데 낀 고춧가루. 이빨 하나가 엄지 손톱만하다.

손에 들린 이쑤시개가 정확하게 고춧가루를 찾아갈 때마다 빨간 뭉치가 하나씩 사라진다.

이윽고 하얀 (사실은 약간 누런) 이빨만 남았다.

그녀는 한발 물러서 다시 한번 이를 드러내며 웃어보곤 밖으로 나간다.

여자의 입장에선 그다지 이상한 일을 한게 아니다.

그저 거울을 보고 식사의 잔해를 제거한 것뿐이다.

그러나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어쩐지 민망스럽다.

죄를 진 기분이다.

그래도 보안을 중시하는 업체 특성상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하나는 봤지만 둘을 못봤다.

거울을, 아니 거울에 비친 자신의 치아를 응시하면서도 그 뒤에 핀홀 카메라 (바늘구멍 카메라.일명 1㎜ 카메라)가 숨어있다는 걸 모른 것이다.

보안상 핀홀 카메라는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설치한다.

그래서 거울 뒤가 단골장소다.

뒤쪽에 카메라를 달고 거울 뒷면의 수은을 볼펜심 굵기 정도만 벗겨내 핀홀렌즈를 대면 방 전체가 환하게 보인다.

"거울을 보며 하는 행동은 누구나 흡사하지만, 그래도 막상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터져나오기 일쑵니다. " 은행 야간창구 카메라 관리인 이모 (31) 씨의 얘기다.

비단 거울뿐 아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떤 CCTV (폐쇄회로TV) 카메라가 우릴 지켜보는지 알 수 없는 세상이다.

지난해만도 구리시 인구수와 엇비슷한 약 15만대의 CCTV카메라가 우리 주변 어딘가에 새로 자리잡았고, 올해엔 충주시 인구 정도 (약 20만대)가 늘어날 예정이다.

이미 이들의 감시를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출근길엔 버스전용차선 감시 카메라가 따라붙고, 회사에 가면 보안용 장비가 기다린다.

은행.서점을 가도 늘 주시하고 있으며, 집앞 골목길은 쓰레기 무단투기 감시용 카메라가 버티고 있다.

물론 이것들은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굴뚝에 들어가 24시간 매연을 감시하고, 무너진 건축물 틈새를 비집고 다니며 사상자를 찾아낸다.

각종 강력사건 해결의 일등 공신도 이들인 경우가 많다.

최근엔 아파트 놀이터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공동수신 안테나를 통해 각 가정에서 지켜본다.

일부 병원에선 진료장면을 보호자 대기소에 틀어주며 답답한 가족의 마음을 달래준다.

심지어 축의금 받는 장면을 녹화해주는 예식장까지 등장했다.

비양심적인 사람들을 궁지에 몰아넣은 것 역시 카메라의 공이다.

얼마전 미국에서 일어난 일 - .아이가 보모를 무서워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맞벌이 부부가 감시 카메라를 통해 녹화를 했더니, 비디오 테이프엔 부모가 나가자마자 돌변한 보모가 아이를 때리고, 굶기고, 방치하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우리나라에선 대구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차 보닛 위에 떨어져 있던 지갑을 슬쩍한 주부가 카메라에 잡혀 망신을 당했다.

이렇듯 카메라의 기여도가 커지면서 공급이 늘고,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져 값도 많이 내렸다.

큼지막한 점포를 감시할 수 있는 카메라 4대와 녹화기.영상 분배기 세트가 4백만원 정도며 핀홀 카메라도 30만~50만원쯤이면 설치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감시 카메라의 대중화 과정에서 파생된 부작용 또한 만만찮다.

호텔방으로 숨어든 불륜 커플이 렌즈에 붙들려 돈을 뜯기는 사례는 벌써 다반사다.

대통령 아들의 불미스런 모습이 믿었던 사람을 통해 사방팔방으로 퍼지기도 했으며, 여자 화장실의 거북한 순간을 숨어본 한 백화점의 사례에서 우려는 극에 달했다.

무릇 적을 알아야 이기거늘 사람들은 무관심 일변도다.

바늘구멍을 피하기 위한 기초상식 몇 가지 - 실내공간에 들어서면 천장을 살피자. 스프링클러나 화재경보기 외에 이상한 물체가 있으면 일단 경계해야 한다.

특히 방의 구조상 구석구석이 훤히 보이는 위치를 주시하라. 만약 바가지 엎어놓은 모양의 물건이 눈에 띈다면, 분명 그 안에는 카메라가 있다.

핀홀 카메라의 경우, 거울.벽.장.가전제품 케이스 등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지 살펴야 한다.

구멍 안에서 뭔가 반짝이면 이건 틀림없다.

그러나 "마음 먹고 숨기면 절대로 못 찾는다" 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니, 주변에 사람이 없어도 낯선 곳에선 긴장을 완전히 풀지 않는게 상책일 듯하다.

왠지 살아가는 게 빡빡해진 느낌이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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