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 어떻게 시키세요? ③ 뮤지컬 배우 최정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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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혜 기자


  “마음은 항상 ‘수퍼맘’이죠. 원래 아이들을 좋아했어요. ‘뽀뽀뽀’를 할 때도 정말 즐겁게 했고요. 하물며 내 아이는 오죽 예쁘겠어요.”

최씨는 딸 얘기만 나오면 자랑할 게 무척 많은 팔불출 엄마다. 아이에 대한 이야기 끝에는 ‘예쁘다, 기특하다, 잘한다’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요즘은 가수들 춤을 따라 하는 데 푹 빠졌다”며 휴대전화에 저장된 동영상을 보여준다. 최근 섭렵했다는 소녀시대 ‘Gee’ 안무를 따라 하는 딸의 모습에서 끼가 철철 넘친다.

■역할극 통해 스스로 깨우치도록 도와줘= “저도 비교적 이른 시기인 고등학교 때 배우 준비를 시작했어요. 그래도 가끔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수아는 좀 더 일찍 시키고 싶었어요. 다른 건 제가 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피아노하고 발레만큼은 꼭 배우도록 했어요.” 딸도 무용을 좋아해 발레는 지금껏 꾸준히 배우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시간은 최씨가 직접 탭댄스도 가르쳐 준다.

아이가 자유로운 상상을 많이 할 수 있도록 함께 공연 관람이나 여행도 많이 한다. “공부도 재미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 임양이 1학년 때 받아쓰기에서 40~50점을 받아왔지만 다그치지 않았다. 대신 역할극을 했다. “수아더러 선생님 역할을 하라고 했어요. 항상 학생만 하면 재미없으니까. 수아가 문장을 불러주면 내가 학생이 돼 받아쓰기를 했어요. 일부러 틀리기도 했죠. 그러면 아이는 진짜 선생님이 된 양 ‘이건 이렇게 쓰는 거야’ 하면서 자상하게 고쳐 써주더라고요.” 그 후로 임양의 받아쓰기는 거의 100점이었다.

최씨는 배우로서의 연기력을 집에서도 발휘했다. 임양이 피아노를 배울 당시 레슨 시간 외에는 연습을 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일부러 피아노를 독차지하고 쳤다. 그리고 말했다. “수아는 원래 복습 안 하니까 엄마가 칠래. 엄마는 어렸을 때 가난해서 피아노 배우고 싶은데도 못 배웠어. 지금도 공연 연습할 때 피아노는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야 해. 수아가 열심히 해서 나중에 대신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의 선의의 연기(?)는 효과가 있었다.

“뮤지컬 연습을 할 때도 항상 중간이 힘들더라고요. 처음 노래를 배울 땐 재미있다가 10~20번 반복하면 지루해지죠. 하지만 30번쯤 되면 노래의 참맛을 알게 돼 다시 재미있어져요. 중간에 포기하면 안 되는데, 아이들은 인내심이 없으니까 엄마가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씨는 김연아 선수 이야기를 예로 들며 옆에서 이끌어주는 엄마의 역할을 강조했다. “일하느라 미안하니까 아이가 하자는 대로만 해준다? 그건 아닌 것 같다”고 그는 잘라 말했다.

■“훌륭한 배우가 되는 게 아이에게도 행복”= 그도 처음엔 일터에서 집 생각, 집에서는 일 생각으로 힘들었다. 그러나 딸이 친구에게 엄마를 ‘뮤지컬 배우 최정원’이라고 알려주는 것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가 훌륭한 배우가 되는 게 아이에게도 행복을 주는 길인 것 같아요. 저에게 무대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행복 그 자체고 살아가는 힘이에요. 그래서 그만둘 수 없었어요. 그러니 미안해하기보다 각각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죠.”

대신 그는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한다. 공연 때문에 저녁엔 함께하지 못할 때가 많아 아침 시간을 활용한다. 아침밥만은 꼭 챙겨주기 위해 보통 오전 6시30분에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한다. 7시쯤 임양이 일어나면 1시간 남짓 이것저것 챙겨주며 수다를 떤다. 때론 집을 나서며 쪽지를 남겨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 혼자 집에 남아야 할 경우가 생기면 ‘오늘은 수아가 엄마가 돼서 강아지 밥도 주고 혼자 숙제도 하는 거야’라고 적어둔다.

딸의 학교 공부는 남편 임영근(40)씨가 주로 지도해 준다. 그는 현재 수원대·경희대 등에 출강하는 교수다. 그래서인지 “가르치는 데 소질은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영근씨가 일찍 퇴근해서 아이 공부를 봐주는 덕에 지금 수학만 학원에 보내고 있어요. 국어·음악·체육을 잘하는 편입니다. 미술은 생각보단 못하더라고요(웃음).”

최씨는 학교·학원 선생님에게 거의 찾아가보지 못하는 학부모다. 하지만 전화 통화로라도 아이 성격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도움을 구한다. “자존심이 강해 칭찬을 해주면 더 열심히 한다”는 귀띔과 함께 “잘 못해도 괜찮으니 그저 재미있게 배우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한다. 그 덕분인지 임양은 학원에 다니는 것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이에게는 늘 ‘즐기라’고 말해요.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대신 그만둔 뒤에는 다시 하고 싶다고 해도 안 된다고 해요. 하고 싶은 일은 끝까지 해내는 책임감을 가졌으면 해서죠.”

임양이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아이, 먼저 다가갈 줄 아는 아이로 자라났으면 좋겠다는 최씨. 자신의 어머니가 공부하라는 말 대신 믿음으로 지켜봐 주셨기에 그 역시 아이에게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가르쳐 주고 싶다고 했다. ‘올해의 배우상’을 받던 날, 축하의 의미로 딸이 불러준 노래가 상 받은 것보다 더 감동적이었다고 말하는 그. 감동과 기쁨, 힘의 원천인 딸이 있기에 ‘배우 최정원’ 역시 무대 위에서 행복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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