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탑' 부처 사리 모신 '무덤'서 유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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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탑의 전형을 최초로 확립한 불국사 석가탑(左)과 석탑의 파격미를 보여주는 다보탑. [중앙포토]

보수하려고 해체했던 경천사지 10층 석탑(국보 제86호)이 10년 만인 10월에야 복원된다.

이 탑은 보기 드문 10층 대리석탑으로 고려 충목왕 때인 1348년 지금의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에 건립됐다. 우리나라의 국보와 보물 가운데 25% 정도는 탑이다. 탑과 문화재의 중요성 등을 공부한다.

탑은 사리(舍利.참된 불도 수행의 결과로 생긴다는 구슬 모양의 유골)신앙에서 비롯한 불교의 독특한 조형물이다. 탑은 탑파(塔婆)로도 불리는데, 원래 고대 인도 범어(梵語)로 '무덤'을 가리키는 '스투파(stupa)'에서 유래했다.

기원 전 5세기 초 인도에서 불교의 교주인 석가(부처)가 죽자 그의 몸을 화장해 나온 사리(진신사리)를 얻게 되었다. 이 사리를 안치하려고 지은 게 최초의 탑(스투파)이다.

따라서 탑은 불교의 교주인 석가의 무덤인 셈이다. 요즘엔 흔히 뾰족한 고층 건물을 탑이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그건 탑이 아니다. 처음 석가의 사리는 인도를 분할했던 여덟 나라에서 똑같이 나눠 갖고 각자 탑을 세워 모셨다. 사리신앙은 이때 시작됐다.

석가 사후 100년이 지나고 인도를 통일한 마우리아왕조(기원전 317~기원전 180)의 아소카왕(阿育王)은 사리를 모신 여덟 개의 탑을 발굴했다.

그리고 사리를 거둬 다시 여러 개로 나누고 인도 전역에 탑을 세워 봉안했다고 한다. 탑이 늘며 불교도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고, 불교 전파의 계기가 됐다. 불교가 퍼지고 탑의 수요가 늘자 진신사리가 모자라게 됐다. 그래서 대신 부처의 상징물인 법신사리(석가의 유품이나 불교 경전) 등을 넣고 탑을 세웠다.

경주 불국사 석가탑(3층 석탑.국보 제21호)에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제126호)이 나오기도 했다. 다라니경은 통일신라 때 불경의 핵심을 적은 경문이다.

◇우리 탑의 특징=4세기 후반 불교가 중국을 거쳐 들어오며 탑 건립 기술도 함께 이전됐다. 탑은 건축 재료에 따라 목탑.석탑.전탑(塼塔.점토를 구워 만든 벽돌 탑)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질 좋은 화강암이 풍부해 석탑이 발달했는데, 현존하는 1000여 기의 탑 가운데 대다수가 석탑이다. 중국은 전탑,일본은 목탑이 발전했다.

◇탑의 구조=고대 인도의 불교미술 초기에 나타나는 탑은 왕릉 모양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단(基壇) .탑신(塔身).상륜부(相輪部.탑 맨 꼭대기의 장식물)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탑 형태를 갖췄다. 우리나라 탑도 세 부분으로 이뤄진다. 탑신부는 보통 층수를 결정한다.

탑의 이름은 장소.층수.재질 순으로 짓는다. 예컨대 '불국사 3층 석탑'은 불국사에 있는 3층짜리 돌로 만든 탑이란 뜻이다.

이태종 NIE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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