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남측 체류 인원 볼모로 … 군사 도발 제외하면 최고 수위 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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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북한이 남북 관계의 ‘마지노선’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개성공단 내 남측 체류 인원의 귀환 문제를 위협하고 나섰다. 지금까지가 말로 하는 위협이었다면 9일부터는 ‘남측 국민의 안전’을 볼모로 삼은 행동에 들어간 셈이다.

북한군 총참모부가 끊어 버린 동·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의 군 통신선은 현재 남북 사이에 남아 있는 유일한 연락 채널이다.

북한이 9일 군 통신선을 차단하면서 남북 간 통신이 두절돼 경기도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의 출경·입경 통행 업무가 중단됐다. [파주=연합뉴스]


남북 해사 당국 라인과 항공 당국 라인도 살아 있지만 두 직통 전화는 각각 표류하는 어선이나 항공 관제 때의 연락용으로 쓰여 평소 남북 접촉에는 사용되지 않는다. 특히 군 통신선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지구의 통행을 관장하는 채널이다. 서해지구 통신을 맡은 6회선은 지난해 5월 이후 불통돼 동해지구의 3회선으로 개성공단의 통행 허가 업무까지 맡아 왔다. 그 때문에 북한의 군 통신선 차단은 개성공단 체류인원 축소나 출입 통제 강화 등 지금까지의 압박 수단과는 전혀 다르다.

통신선이 끊겨 개성공단에 들어가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공단에 체류 중인 남측 인원 573명과 차량 380대가 공단 내에 사실상 억류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금강산 관광지구의 남측 인원 43명도 귀환 여부가 불투명하다. 북한이 키 리졸브 한·미 연합군사연습 기간(9∼20일) 동안 통신선을 계속 차단할 경우 이런 상태가 지속될 수도 있다.

동국대 김용현(북한학) 교수는 “군사적 도발 등을 제외한다면 북한의 통신선 차단 조치는 최고점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민감한 사항인 남측 인원의 귀환 문제까지 건드린 건 앞으로 대남 압박에 ‘올인’할 수 있음을 보여 주려는 시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개성공단을 방문한 김영철(남북 장성급회담 대표)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실 국장은 입주 기업인들이 “공단 운영에 정치 논리를 개입시키지 말아 달라”고 하자 “공화국에서 정치 없는 경제는 없다. 정치가 우선”이라고 잘라 말했다. 북한으로선 경제적으로 실리를 얻을 수 있는 개성공단조차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압박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이다.

일부에선 1994년 1차 북핵 위기 상황과 비교해 북한의 긴장 고조 전략이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를 겨냥한 것으로도 해석한다. 김영삼 정부 2년차이자 1차 북핵 위기가 발생한 그해 3월 북한은 팀스피릿 훈련 중단을 요구하며 남북 회담에서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런 뒤 그해 10월 클린턴 미 행정부와 제네바 합의로 북·미 관계를 급반전시켰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한·미 군사연습 중단을 주장하며 미국의 양보 여부를 지켜보려는 것 같다”고 분석한 뒤 “미국의 호응이 없을 경우 앞으로도 위기 극대화 전략을 계속 구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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