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기행]오니뮈스著 '노동이 사라지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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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현재 지구촌 최대 고민거리인 실업. 그러나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가올 세번째 천년은 '역사의 종말' 이 아닌 '노동의 종말' 을 고하는 시대가 될것이다.

이 충격적인 진단의 진원은 프랑스 니스대학의 철학교수 장 오니뮈스가 최근 펴낸 '노동이 사라지면 (Quand le travail disparait) .현재 프랑스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책이다.

그렇다면 미래는 절망으로만 다가올 것인가.

책의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대량실업은 신세기의 시작이자 문명의 지각변동을 알리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다소 유토피아적인 이 책은 경제의 영역으로만 여겨지던 실업문제를 다소 이색적인 문명사적 시각에서 긍정적으로 봤다는 점에서 더욱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있다.

저자는 노동 (labor) 이라는 라틴어는 본래 '실패' 와 '추락' 을 함께 뜻하는 말이었다고 지적한다.

어원에서 엿볼 수 있듯 노동은 원래 인간에 내린 신의 저주였다.

"네 이마의 땀으로 밭을 갈고 손의 노고로 먹으라" 고 아담에게 내린 벌로 여겨지던 노동이 은총으로 변모한 것은 불과 2백여년전의 일이다.

정확하게는 일국의 부 (富) 의 축적수단으로서 노동의 가치를 부각시킨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1776) 이 계기이다.

이후 노동은 프랑스의 계몽사상, 프로테스탄트적 윤리관, 근대시민사회의 태동을 거치며 시대의 필요에 따라 악에서 미덕으로, 의무에서 권리로 가치관을 바꿔왔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능력과 자질을 가늠하는 '존재의 이유' 로 자리매김했다.

결국 인간은 그 본질과 상관없이 '호모 에코노미쿠스' (경제적인 인간) 로 탈바꿈했고 그 결과 문화예술이나 사회봉사같은 다른 종류의 활동은 크게 위축되어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은 무엇보다 실업은 경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강조하고있다.

이제 막 궤도에 오른 정보사회는 그 본질상 인간을 노동에서 밀어내지 않을 수 없으며 그 속도는 이전의 산업사회보다 훨씬 빠를 것이기 때문이다.

또 지구자원이 고갈되지 않고서는 실업을 따라잡을 정도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 수 없으므로 고용창출과 같은 방법으로 실업을 치유한다는 것도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제 실업의 시대는 피할 수 없는 역사의 법칙으로 보인다.

그러면 무엇을 할 것인가.

저자는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으로 떠날 차비를 갖추라고 권고한다.

그 전형으로는 소유보다 존재적 삶이, 생산보다 문화.예술이 중시되던 고대 그리스사회를 꼽는다.

저자는 인류의 미래가 소수의 '귀족' 만이 일하고 다수의 '노예' 가 실업에 시달리는 우울한 시대가 될 것인지, 아니면 문화예술이 도약하는 문명사의 새로운 황금기가 될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는 경고도 잊지 않고 있다.

최성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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