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반, 가사집을 꼭 봐야 하는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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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호 11면

“이것이 저를 괴롭힙니다/결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나사를 조이고 있다는 사실이/저는 파괴에 필요한 부속품을 만들어냅니다/(중략)그러나 세상을 악하게 만든 건 제가 아닙니다.”

플라시도 도밍고의 ‘아모레 인피니토’

2005년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 ‘양심’이다. 전쟁 무기를 만드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빌렸다. 하지만 욕심과 피로 얼룩진 세상에 대한 절규와 고백은 교황 자신의 것이다. 그는 입교 전 연극배우이자 시ㆍ희곡을 쓰는 작가로 활동했다. 교황이 된 이후에도 영성에 대한 통찰, 내면의 갈등 등 모든 것이 그를 거쳐 시가 됐다.

이 작품들에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주목했다. 선종이 멀지 않았던 때에 교황을 마지막으로 만난 바티칸에서 도밍고는 “자작시와 명상록을 보여 달라”고 간청했다. 교황의 놀라운 영감과 따뜻함이 그를 도왔다. 그는 대중도 이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앨범을 기획하기 시작했고, 작곡가와 번역가(도밍고의 아들) 등 팀이 꾸려졌다.

앨범 ‘아모레 인피니토(Amore Infinitoㆍ무한한 사랑)’는 이 같은 작업의 결실이다. 교황의 시 12편에 음악을 붙였다. 단순한 선율, 도밍고의 익숙한 목소리가 편안하다. 교황의 시가 아니었더라도 대중에게 인기를 끌 만한 요소가 많은 음악들이다. 큰 규모의 장중한 오케스트라 소리에 비극과 찬란함을 배합했다. 다만 감동을 강요하는 듯한 지나친 감상이 종종 보이는 것이 작은 흠이다.

음악보다 가사에서 오는 감동이 훨씬 크다. 도밍고가 밝혔듯 “인류와 신을 위한 봉사에 한평생을 바친” 인물이 남긴 말들은 큰 울림과 깨달음, 마음의 평화를 끌어낸다. 지난달 한국을 적셨던 김수환 추기경의 메시지, ‘감사’ ‘사랑’ 또한 각각 시의 제목으로 노래됐다. 다른 어떤 음악보다 영어ㆍ한글로 번역된 가사집을 보면서 들을 필요가 있는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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