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亂世智略' 작가 조성기의 이시대 처세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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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난세, 난세, 난난세로다.

난세 아닌 때가 언제는 있었겠냐마는 요즈음 우리나라 돌아가는 상황을 살펴보면 난세 (亂世) 앞에 '난 (亂)' 자를 한 자 더 붙이고 싶은 심정이구나. 난세에는 무엇보다 지략이 필요한 법이로다.

◆성공한 곳에는 오래 머물지 말라

필자가 '난세지략' 의 집필을 끝내고 나서 가슴에 가장 깊이 울리던 말은 '성공지하, 불가구처 (成功之下, 不可久處)' 라는 구절이었도다.

연 (燕) 나라 태생 채택 (蔡澤) 이 진 (秦) 나라 재상 범저 (范雎) 를 찾아와 충고한 말로, '성공한 곳에는 오래 머물지 말라' 는 뜻이로다.

범저는 자신의 성공에 도취하여 자기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으나 채택이 바로 그 점을 지적해 주었구나. 사람이 성공하기도 어렵지만 성공을 지켜나가는 것은 더욱 어려운 법. 성공을 지켜나가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도취로다.

자기도취에서 깨어나 다시 새로운 목표를 향해 정진하지 않는 한 애써 이룬 성공은 금방 물거품이 되기 십상이로다.

우리나라 어느 대선 정당후보는 오랜 법조계 생활을 통하여 법대로 소신대로 처신함으로써 소위 대쪽 이미지를 이루는데 성공하였도다.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이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그 사람의 도덕성과 청렴성은 신선한 자극제가 되었고, 그러한 이미지 자체가 하나의 대안이 되다시피 하였도다.

하지만 그 후보는 자신의 성공에 오래 머물러 있음으로써 손해를 많이 보게 되었구나.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아들의 병역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 후보는 자신의 대쪽 이미지 성공에 도취하여 그 문제의 심각성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우 (愚) 를 범하였도다.

자신이 이룬 성공이 그러한 문제로 인한 잡음들을 금방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 여겨 안일하게 대처하였구나. 이것은 대통령을 비롯한 문민정부 개혁세력들에게도 해당하는 진리로다.

민주투사로서의 성공에 도취하여 거기에 오래 머물러 있었구나. 민주투사의 역할과 대통령의 역할은 엄연히 다른 법. 폴란드의 바웬사도 노조위원장의 역할과 대통령의 역할을 잘 구분하지 못하여 여지없이 실패하고 말았구나. 이런 점에서 남아공 대통령 만델라는 그야말로 지략가로다.

민주투사로서 대통령에 오르고 나서 자신의 성공에 도취하여 섣불리 개혁의 칼을 뽑아들기보다는 정치.사회현실을 냉철히 파악하고 재빨리 국민 대통합의 정치를 펼쳤도다.

자신의 과거 잘못을 시인만 하면 용서하는 초법적인 특별법으로 예수와도 같은 정치를 펼쳤으니 정적들의 굳은 마음도 만델라 앞에서 녹았도다.

만델라는 서늘한 칼바람보다는 따뜻한 햇볕으로 수치스런 과거사의 옷을 벗기고 역사를 바로 세웠도다.

다시 그 후보 문제로 돌아와 생각하건대, 그 후보에게는 오히려 지금이 자신의 대쪽 이미지를 벗고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시험하고 갖출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다.

이번의 시련이 없었더라면 대쪽 이미지 그대로 대통령이 되어 자기도취에 빠지는 우를 범하는 전철을 또 밟을 뻔하였도다.

그랬으면 수지청즉무어 (水至淸則無魚) 라, 물이 너무 맑아 물고기가 한 마리도 모여들지 못했으리라. 두 아들이 군대에 가지 않은 약점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인간적인 약점들이 오히려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고 너그럽게 만들어 물이 적당히 탁하여지다 보면 여기저기서 물고기들이 모여들게 마련이로다.

◆아들을 마신 아버지를 경계하라

위 (魏) 나라 악양 (樂羊) 장군이 중산국 (中山國) 을 칠 때 중산국 군사들이 중산국에 사는 악양의 아들 목을 베어 악양에게 보내었도다.

중산국에서는 악양의 사기를 꺾기 위해 그런 짓을 하였건만 악양은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자기 아들 목을 솥에 넣어 끓인 국을 마시고는 분연히 일어나 중산국을 쳐서 승리하였도다.

악양이 보무도 당당히 개선하여 고국으로 돌아오니 위나라 군주인 문후 (文侯)가 성 밖으로까지 나와서 맞이하며 그의 충성심을 칭송해 마지않았도다.

그때 도사찬 (都師贊) 이라는 대부가 문후의 귀에 속삭였도다.

"자기 아들의 목까지 끓여 마신 사람인데 누구의 목인들 끓여 마시지 않겠습니까?"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난 문후는 악양을 경계하여 한직을 주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였도다.

무릇 자신의 명예를 위해 아들의 사생활과 인격을 희생시키는 아버지는 경계할진저. 잘못이 있다면 아들에게 있지 나에게는 없다고 변명하는 아버지도 경계할진저.

◆문어발은 뱀발이로다

무리하게 문어발 확장을 하던 재벌들이 속속 부도를 내고 문어발 하나 건지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문어발이 사실은 뱀발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로구나. 초 (楚) 나라 사람들이 술 한잔을 놓고 뱀그리기 내기를 하였도다.

뱀을 먼저 그리고 나서 여유가 있다고 뱀발까지 그린 사람이 술잔을 차지하려다가 뱀은 발이 없다고 항의하는 상대방에게 술잔을 그만 빼앗겨버렸구나. 이것이 유명한 사족 (蛇足) 고사가 아닌가.

사족은 그냥 필요없는 것이 덧붙어 있는 그런 정도가 아니로다.

사족은 그것이 붙어 있음으로 해서 이왕에 있던 것까지 다 빼앗기게 되는 무시무시한 함정 그 자체로다.

재벌들은 사족 고사의 심각성을 더욱 깊이 깨달을진저. 어디 재벌들뿐이겠는가.

사족 같은 첩을 두려다가 본처까지 잃고 마는 이들이여, 그 어리석음을 어이할꼬. ◆소진 (蘇秦) 의 칠화법 (七話法) 을 활용하라 우리나라 속담에 '말 잘 하기는 소진 장의로다' 하는 구절이 있도다.

소진은 일곱 나라가 각축전을 벌이는 전국시대에 여섯 나라 재상을 해먹었으니 그 언변이 어떠했으랴. 소진의 칠화법은 이러하니, 일단 상대방을 높이고 칭찬하여 기쁘게 하는 열지이예 (悅之以譽) , 상대방에게 정성을 보임으로써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시지이성 (示之以誠) , 돌아가는 판세를 설명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도록 하는 명지이세 (明之以勢) , 말을 들으면 어떤 이익이 있는가 유혹하는 유지이리 (誘之以利) ,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떤 해가 미칠 것인가 위협하는 협지이해 (脅之以害) ,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려 마음을 격동시키는 격지이언 (激之以言) , 상대방이 마음을 정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을 즈음 마지막 힘을 다해 밀어붙이는 역배이의 (力排異議)가 그것이로다.

여기에 관한 구체적인 적용 사례들을 알아보려면 필자의 졸저 '난세지략' 이나 그 원전인 '전국책' 을 참조하시라. 이 칠화법은 정치에도 외교에도 상업에도 교육에도, 더 나아가 전도에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로다.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 뒷골목 깡패들 같이 싸우지 말고 소진의 칠화법을 멋지게 구사해 보시라. 이외에 헛방을 쏘고도 날으는 기러기를 떨어뜨리는 허발법 (虛發法) 의 지략은 쓸데없이 힘을 쓰지 않고도 상대방을 쉽게 쓰러뜨릴 수 있으니 각종 범죄와 폭력과의 전쟁에 응용할 수 있도다.

소출병 (少出兵) 의 지략은 박정희 대통령이 월남전 때 미국을 상대로 써먹은 것으로 강대국들 사이에서 약소국이 살아남을 수 있는 눈물겨운 전략이로다.

이렇게 현인들로부터 지략을 하나하나 배우고 각 방면에 응용해 나간다면 우리 국민도 능히 이 총체적인 난세를 헤쳐나갈 수 있도다.

난세를 탓하지 말고 우리에게 지략이 없음을 탓할진저. 이번에 통치지략을 지닌 지도자를, 21세기를 바라보고 먼 후손을 바라보는 현명한 선택지략으로 뽑아 불원간에 통일민족으로 웅비할진저.

조성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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