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의 중국산책] 暴亂과 風波, 그리고 平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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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지도자들 가운데
올해 중국 지도자들만큼 힘든 시기를 맞는
지도자들도 드물 것 같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맞아
국내 경기 부양이 급선무인 와중에
중국은 올해
티베트 무장봉기 50주년(3월10일),
파룬궁 시위 10주년(4월25일),
6.4 천안문사태 20주년(6월4일) 등
각종 민감한 사안들과 잇따라 대면해야 한다.

한국 언론에선
'마(魔)의 4개월이 시작됐다'는 보도도 나온다.
어느 하나 긴장의 고삐를 늦추기 어려운 민감 사안들이다.

이중 최근엔
6.4 사태에 대한 재평가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20년 전 천안문 사태 당시 학생 운동의 주역이었던
왕단은 최근 왕년의 동지 20여 명과 함께 5일 개막된
전국인민대표대회에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 서한은 세 가지 요구 사항을 담고 있다.

첫째, 전인대는 전문위원회를 설립해
덩샤오핑 당시 군사위원회 주석과 리펑 당시 총리가
적군에게나 사용하는 무기를 동원해
시민을 도살한 사실과 경과에 대해 밝히라는 것이다.

둘째, 사실을 밝힌 토대 하에서
덩샤오핑, 리펑 등의 지도부가 내렸던
각종 잘못된 조치를 바로 잡으라는 것이다.
여기엔 현재 박해를 받을 것으로 우려돼 귀국하지 못하는
인사들에 대한 귀국 허용 등이 포함된다.

세째, 조사 결과에 따라서
1989년 폭력사건 중의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보상하며,
동시에 무고한 시민을 폭행한 지도부에 대해서는
위법 책임을 추궁하라는 것이다.

왕단의 요구는 중국 당국이 6.4 천안문 사태 당시
학생들의 시위를
'반혁명폭란'(反革命暴亂)으로 규정하고 무력 진압한데 대한 반발이다.

이와 관련
3일 개막된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외신은 정협 대변인 자오치정에게 6.4 사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입장을 다시 문의했다.

이에 자오치정 선생은
"지난 세기 80년대의 그 '정치풍파'(政治風波)에 대해선
중국정부가 이미 명확한 결론을 내렸다"고 피해 갔다.
현재 다시 천안문 사태를 재평가하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재미있는 것은 6.4 사태에 대한 표현의 변화다.

20년 전엔 '폭란'으로 불렸지만
언제부터인지 '정치 풍파'로 바뀌었다.
'풍파'는 한바탕의 작은 분란에 해당하는 것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하지 않는 중국 당국의 심중이 엿보인다.

'폭란'이라고 부를 때보다
입장이 한결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의 민주 인사들이 요구하는 '평반'(平反)엔 전혀 못미친다.

평반은
그늘져 어두운 곳과 구부러져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1970년대
문혁에 대한 평반의 주역은 후야오방이었다.

후야오방은 문혁 때 누명을 쓴 사람들에 대한 평반 작업을 통해
약 300만 명 가량을 복권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헌데 그런 후야오방의 89년 봄 죽음이
6.4 천안문 사태를 초래하는 계기가 됐고,
20년이 흐른 이제 또다시 천안문 사태에 대한
평반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일부 차이나 워처들은
천안문 사태 진압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리펑 전 총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평반'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허나 역사가 어찌 이런저런 사정을 다 봐주던 적이 있었는가.
중국 대륙에서 또 어떤 변화가 일런지 조심스럽게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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