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옥외광고 모델로 나선 지자체장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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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연아양이 얼음판을 누비는 장면이 텔레비전으로 세계에 중계되는 것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김연아양의 존재 자체는 우리나라가 이제 피겨스케이팅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잘 사는 나라가 됐다는 것을 세계 시청자 가슴에 깊숙이 각인한다. 우리나라가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개최해 국가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고 평가하지만, 김연아양만큼 혼자서 국가 이미지를 끌어올린 스타는 없을 것이다.

이미 국민의 딸이 된 김연아양이 요즘 광고 모델이 돼 꽤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그를 모델로 쓰는 광고주를 손가락으로 꼽기가 쉽지 않으니까 수입이 많을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그럼 광고주는 왜 비싼 모델료를 지불하며 김연아양을 광고에 내세울까? 광고학자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면 수도 없이 많은 이론이나 가설을 꺼내 들 것이다.

그 하나가 준거집단 이론이다. 사람들은 준거할 대상을 정해놓고 그 기준에 맞추어 소비생활을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어느 상품의 전형적인 소비자가 그 상품을 쓰고 있다면 소비자는 그 제품을 믿고 구매한다. 소비자는 피부가 고운 김연아양이 쓰는 화장품이라면 내 피부도 곱게 할 것이라고 믿을 것이고, 김연아양이 애용하는 밴드라면 내가 넘어져 다친 데도 빨리 낫게 할 것이라고 믿고 그 밴드를 살 것이다.

조건반사 이론으로 김연아양의 인기를 설명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예쁜 모델을 보면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예쁜 모델로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해 놓고 곧바로 제품 브랜드를 제시하면 그 제품에 대해서도 사랑스러운 느낌이 이어진다. 바로 이런 현상이 조건반사 이론의 전제다. 김연아양의 모습을 보여 주어 호의적 감정을 조성한 직후에 자동차나 냉장고 제품을 보여 주면 소비자의 감정 상태가 자연스레 제품에 대한 호의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

조화 가설로 김연아 신드롬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광고하는 상품과 유명인의 이미지가 조화로우면 감성적 반응이 전이된다는 것이 이 가설의 출발점이다. 똑똑한 느낌의 유명인이 어느 상품의 모델로 나서면 소비자는 그 상품을 사는 것 자체가 똑똑한 일인 것처럼 느낀다. 지칠 줄 모르고 뛰는 운동선수가 자동차 모델로 나서면 소비자는 그 자동차도 힘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가설에 따라 어느 생수회사는 김연아양의 깨끗한 이미지를 제품 이미지로 연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김연아양이 광고모델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이렇게 여러 가설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도무지 어떤 가설, 어떤 이론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예가 있다. 도지사나 시장, 군수가 모델로 나서는 경우가 그렇다. 그 얼굴이 누구의 어떤 준거가 되는 것인지, 무슨 호의적인 조건반사를 유발할 것인지, 그 얼굴과 그 자치단체의 어떤 이미지가 조화를 이루는 것인지 도무지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도지사나 시장, 군수가 직접 모델로 나서는 것도 그렇지만, 매체를 선택하는 방법도 광고학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기업을 유치하려면 기업가들을 직접 만나거나 책자를 만들어 돌리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나 지사나 시장, 군수는 그런 좋은 통로를 외면한다. 옥외광고판은 기업가들이 자세히 읽으려 하지도 않는데 지사나 시장, 군수는 더우나 추우나 한사코 옥외로 달려간다.

지사나 시장, 군수만 그러는 게 아니다. 요즘은 그런 자리를 노리는 공공단체나 공기업 임원까지도 다투듯이 옥외 모델로 나선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아마 옥외 광고판은 인물 모델로 가득 찰지 모른다.

지방자치단체를 광고하는 척하면서 공금으로 자기 인지도나 높이자는 속셈이라면 그런 광고는 한마디로 속임수다. 지방자치단체 광고에도 광고학이 통해야 한다. 그래야 광고도 살고, 광고학도 살고, 지자체도 산다.

김민환 고려대 교수·언론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