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週를 열며]李지사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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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인제 (李仁濟) 지사의 입장이 미묘하다.

지난7월21일 그는 신한국당 후보경선에서 이회창 (李會昌) 후보에게 완패, 대선후보 자리를 내주었다.

그런데 각종 여론조사는 자신에 대한 국민 지지율이 여전히 1위를 달리고2, 3위권에 허덕이는 이회창후보는 물러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총재 직선제와 복수 부총재를 골자로 한 당 개혁안을 밀어붙여 차차기를 위한 당내 입지강화를 모색했으나불발에 그친 듯 하다.

또 다른 경선 탈락자와 연대를 통해 李대표의 후보사퇴를 압박하였으나, 그도 여의치 않다.

그래서 마지막 던진 카드가 후보교체론의 공론화 전략이다.

李대표는 두 아들의 병역문제로 국민의 지지도가 저조하고 당 지도력조차 미약하여 대선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므로 李지사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논리다.

만약 이 전략마저 실패할 경우 그는 조만간 중대 결단을 내린다는 배수진을 치고 있다.

즉 탈당을 통해 신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출마하려는 수순이며, 이것이 그의 '큰 그림' 인 것같다.

그러나 낙관은 금물. 호사다마 (好事多魔) 라고 할까, 현실은 차이가 있다.

먼저 대의명분이 약하다.

李지사는 경선전 결과에 승복할 것을 10여차례나 공약한 바 있고, 경선직후에도 이회창 후보의 손을 번쩍 들어주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민주주의 원칙과 합법적으로 당선된 후보 자리를 내놓으라는 것은 반민주적 발상이며, 정치윤리상 비도덕적 행위로 비칠 뿐이다.

다음으로 당의 대세가 부정적이다.

자신이 탈당한후 창당을 할 경우, 과연 얼마나 많은 현역의원들이 합세할 것인가도 불투명하다.

비록 창당을 하더라도 군소 (群小) 정당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러한 대선 전략적 창당은 사당 (私黨) 이라는 구태의 재현일 뿐. 3金청산의 명분조차 찾지 못하고, 그의 주무기라고 할 수 있는 '참신성' 마저 상실할 가능성이 짙다.

마지막으로 사당의 창당은 그의 정치적 생명과 직결되는 일대 모험이며, 일종의 정치적 쿠데타로 여겨진다.

과연 황야에 나가 대권을 노리는 혈투를 벌일 것인가, 아니면 신한국당에 남아 은인자중 (隱忍自重) 할 것인가.

이것이 李지사의 딜레마다.

李지사는 경선탈락후 한번도 李후보를 지원하지 않았다.

이제까지의 거취로도 李지사의 행보자체는 이미 정치도의상 정도 (正道) 를 벗어났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는 시대정신에 입각한 정도를 걷겠다고 말하나, 지조 (志操) 는 고금동서의 절대정신이다.

고대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은 '정치다운 정치' 는 '올바름 자체 (auto to dikion)' 라고 하였고, '논어 (論語)' 에서 공자는 '정치란 올바름이다 (政者正也)' 라고 정의 (定義) 한 바 있다.

정치다운 정치는 '정치답다' 는 말이요, '올바름 자체' 는 '정도 (正道)' 를 뜻한다.

공자나 플라톤 모두 정치인의 '정도' 가 바로 '정치' 자체요 본질임을 강조한다.

만약 정치인이 정도를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정치가 아닐 것이다.

나는 李지사를 진실로 지지한다.

그러나 李지사에게 바란다.

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릴 것을. 서두르지 말고 착실히 절차탁마 (切磋琢磨) 하면 기회는 저절로 올 것이다.

비록 국민의 지지가 1위를 달린다 해도, 그것을 국민의 사랑으로 생각하고 겸허히 대도를 걷는다면 차차기는 어렵지 않으리라. 코 앞에 잡히는 듯한 이권 (利權) 앞에 동요는 금물이다.

이권을 앞세운 후에 명분을 찾지말고, 대의명분을 앞세운 다음 이권을 취하는 것이 대인 (大人) 의 자세가 아닌가.

대학에 의하면 나라의 정치는 이 (利) 로써 의로움을 삼는 것이 아니라 의 (義) 로써 이로움을 삼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신한국당 후보탈락 자체를 천명 (天命) 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李지사의 정도라고 생각한다.

李지사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최병철 <유도회 사무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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