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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밖 ‘외계인의 시선’이라니 윌슨, 자네는 말 짓기의 달인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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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다윈은 지식의 통섭자(統攝子)다. 1838년 그는 정치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6판)을 읽다가 ‘생존경쟁’이라는 키워드를 뽑아냈다. 1844년에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편지를 쓴다. “내 책의 절반은 라이엘의 머리에서 온 것 같아요.” 찰스 라이엘은 당대 최고의 지질학자였다. 그런 그가 오늘 하버드대의 사회생물학자이자 『통섭』의 저자인 에드워드 윌슨을 서재에 초대했다.

2-1. 다윈, 윌슨과 ‘통섭’을 얘기하다,
다윈= 자네의 『통섭』을 읽고 얼마나 반갑던지 한번 만나보고 싶었소. 자넬 ‘21세기 다윈’이라 하더군. 나와 삶의 궤적, 지적 관심, 취미까지도 비슷하다고. 난 딱정벌레에 미쳤었는데 자넨 개미였지?

윌슨= 감히 제가요? 제 책을 좋게 평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윈= ‘통섭(統攝·consilience)’이라는 단어를 발굴했더군. 사실 19세기 영국의 위대한 철학자 윌리엄 휴얼이 ‘귀납 과학의 철학’에서 썼던 용어 아닌가? 1840년 즈음에 나도 그 책을 읽으면서 참 재미있는 용어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지. 학문의 큰 가지들이 몇몇 공통 원리와 설명체계들로 묶여 통합된다는 뜻이었지 아마.

윌슨= 선생님 시대에는 꽤 알려진 용어였는데 요즘은 웬만한 사전에도 잘 안 나올 정도로 잊혀졌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통합’이나 ‘일치’ 같은 친숙한 용어를 쓰려고 했었죠. 하지만 너덜너덜해진 용어보다는 생경하지만 순결한 용어가 더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다윈=독자들이 틀림없이 제목을 보고 무슨 뜻인지 궁금해 했을 텐데, 혹시 일부러 그런 전략을 취한 건 아닌가? 책이 좀 팔렸는지 궁금해지는구려.

윌슨= “책은 제목이 반”이라는 말이 맞더라고요. 제목 덕을 좀 봤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통섭』이후로 학자와 대중이 ‘지식의 소통’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다윈= 동의하네. 지난 몇 년 동안 지성계의 최고 화두 중 하나가 ‘통섭’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걸세. 20세기에 들어와 지식의 전문화가 너무 심해지다 보니 자폐적으로 변했지. 『통섭』은 그 흐름에 역행하는 문제작일세.

윌슨= 감사합니다. 하지만 비판도 많이 받았는걸요. “지금이 계몽시대도 아닌데, 이게 웬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냐”는 사람도 있었고, “과학으로 인문사회학을 흡수 통합하겠다는 제국주의적 발상”이라는 사람, “환원주의가 20세기 후반에 이미 망했는데 이제 와서 웬 뒷북이냐”는 사람…평상시 제게 호감을 갖고 있던 인문학자들마저 벌떼처럼 공격하더군요.

다윈= 글쎄, 자네의 『사회생물학』(1975)에 대해서는 그런 비판들이 옳을 수도 있겠지만, 난 『통섭』에서 자네가 보여 준 지식 통합의 노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네. 진화생물학은 물론이거니와 나노물리학과 신경과학, 그리고 철학과 역사학 지식을 총동원했더군. 심지어 예술과 종교의 최근 연구까지. 지식 자랑쯤으로 끝날 수도 있는 일을, 휴얼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아 몇 가지 원리로 통섭하려 했던 것 같아. 그렇지 않나? 그중 ‘후성규칙(後成規則·epigenetic rule)’이 가장 인상적이었네.

윌슨= 네. ‘후성규칙’은 인지 발달의 편향된 신경회로를 뜻합니다. 예를 들죠. 수렵채집기에 인류의 생존을 크게 위협했던 뱀에게 공포를 느끼는 것은 적응적 행동입니다. 이런 진화적 이유 때문에 누구나 뱀에 대한 공포기제를 갖고 태어나죠. 뱀과 친해지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이런 공포는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숭배로 이어졌지요. 공포회로가 숭배 문화로 발현된 것이지요. 이외에도 여러 문화권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남녀의 짝짓기 전략과 미의 기준 등도 후성규칙의 사례들입니다. 이런 규칙들은 유전자와 문화의 연결고리입니다.

다윈= 맞아. 문화를 생물학적 조건과 무관하다거나 자율적으로 굴러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문화도 결국 각 개인의 두뇌 작용들 아닌가? 두뇌는 유전자로 만들어질 테고. 문화의 특수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문제가 많아. 난 이미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1872)에서 문화 보편적인 감정들에 대해 논의했었지. 심지어 그런 감정들을 개나 오랑우탄도 공유하고 있다고 주장했었고. 나름 급진적이었는데 반응은 별로였어.

윌슨= 하지만 저는 그 책 속에서 보석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외계인의 시선’이지요.

다윈= 그게 무슨 소리요? 난 ‘외계인’이라는 말조차 들어보지 못했는데.

윌슨= 제가 만든 용어지요. 만일 안드로메다에서 지구의 생명체를 탐구하기 위해 생물학자를 파견했다고 해봐요. 그의 미션은 지구 생물들의 의사소통 체계를 연구해 본국에 보고하는 일일 겁니다. 그는 틀림없이 인간의 언어 행위를 새의 노래, 침팬지의 팬트 후트, 벌의 댄스, 심지어 개미의 페로몬 작용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보고할 겁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행위는 의사소통이라는 공통 목표를 위한 특화된 해결책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인간에게만 문법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인 양 특별 취급을 하게 되면 정작 중요한 연속성은 보지 못합니다.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이렇게 ‘외계인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게 선생님의 철학 아닌가요?

다윈= 오, 듣고 보니 그럴듯하구려. 그렇다면 자네는 『통섭』에서 그 외계인의 시선으로 인류와 인류가 성취한 ‘지식의 나무’를 그려 보려 했던 거군. ‘새의 관점’ 정도가 아니라 지구 밖에서 보는 ‘외계인의 시선’이라. 역시 자네는 말 짓기의 달인이야. ‘사회생물학’ ‘바이오필리아’ ‘후성규칙’…다 자네의 신조어 아닌가? 하하. 우리 잠시 차 좀 마시고 또 얘기하세.

*이 글은 『통섭』의 공동 역자인 필자가 2년 전 에드워드 윌슨과 그의 연구실에 만나 나눴던 대화를 재구성해 쓴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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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졸. 서울대에서 진화론의 역사와 철학 연구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에서 자연과 인문의 공생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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