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툭하면 수업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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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식 정책기획부 기자

약대 학제를 4년제에서 6년제로 바꾸는 문제를 둘러싸고 약사와 한의사가 큰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의사들이 23일 장외집회를 열 예정이고 약사들도 들썩이고 있다.

약사들은 "2년 공부를 더 해 더 나은 서비스를 하겠다"고 주장하는 반면 한의사들은 "약사들이 한약 공부를 더 해 우리 영역을 침범할 것"이라고 맞선다. 공부 더 하겠다는 것을 막으려는 한의사들의 명분이 약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한의사들의 반발이 한약 취급권을 둘러싼 한.약분쟁(1993~96년)의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점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의견이 다르면 머리를 맞대 해답을 찾으면 될 일이다.

문제는 학생까지 가세했다는 점이다. 서울대를 제외한 19개 대학 약대생들은 11일부터 수업을 거부하고 있고, 한의대생들도 17일 기말시험 거부에 들어갔다.

수업 거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2년 약대 6년제를 두고 약대생이 수업을 거부했고, 2000년에는 의약분업 논란으로 약대생과 의대생이 수업을 거부하며 유급을 자처했다. 4학년생들은 의사와 약사 국시를 거부하겠다고까지 했다.

99년에도 그랬다. 약대생들의 한약사 시험 응시 자격을 두고 한의대생들이 수업을 거부했다가 유급 위기에 몰렸다. 당시 약대생들은 약사 국시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95년 한.약분쟁 때는 한의대생 1129명이 유급된 적도 있다. 현안이 있을 때마다 집단행동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답게 토론이나 대화로 해결하려는 자세는 찾아보기 힘들다.

약사회와 한의사협회는 학생들의 집단행동과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뒷짐지고 있지는 않은지, 은근히 학생들의 힘을 등에 엎으려는 속셈은 없는지를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또 교수들은 무얼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시도가 부쩍 잦다. 고교생이 수업을 거부하고 부모가 초등학생을 등교시키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툭하면 수업을 내팽개치는 악습은 조속히 버려야 한다.

신성식 정책기획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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